[문예마당] 시니어 골퍼들의 열정
동부에선 한파로 전기차조차 방전됐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남가주에서는 골프 하기 좋은 날의 연속이다. 화요일 아침 6시, 집에서 2마일 떨어진 리버뷰(Riverview) 골프장에 도착했다. 겨울철이라 사방이 아직도 깜깜하다. 시니어 골퍼들이 속속 도착해서 카트에 골프채를 싣느라 바쁘다.내가 리버뷰 시니어 골프 클럽에 가입한 것은 4개월 전이다. 매주 정기적으로 함께 골프를 할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아 가입을 문의하니 다음 주 화요일부터 나오라고 한다. 연회비는 15달러, 회원 명단을 보니 65명이다. 이름 옆에 개인별 핸디가 있어 평균을 내보니 14로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명단에 김씨 성을 가진 한인이 한 명 있어 반가웠지만 4개월째 만난 적은 없다.
6시 50분이 되면 회장이 호각을 불어 게임 시작을 알린다. 매주 대개 28명 정도가 참가한다. 2명씩 탄 14대의 카트가 4 군데로 흩어진다. 1번 홀에서 2팀이 시작하고 나머지는 다른 골퍼들이 없는 16, 17, 18번 홀로 분산해 시작한다. 4명이 한 팀으로 매주 팀원은 바뀌고 팀별로 성적을 낸다. 게임 방식 역시 매주 달라 텍사스 스크램블, 라스베이거스 스크램블,월츠 1-2-3, 레드-블루-화이트 등 다양하다.
비용은 할인 가격으로 카트비 14달러를 포함 34달러에 불과하다. 매주 상금으로 6달러씩 걷는데 28명이면 총 168달러가 된다. 이 돈으로 근접상 6명과 1, 2위를 한 두 팀의 팀원 8명 등 모두 14명에게 상금을 준다. 나도 근접상 상금으로 15달러를 받은 적이 있다. 적은 상금이지만 팀별로 경쟁하는 동기 부여가 충분해 긴장과 재미가 있다.
첫 번째 홀에 도착한 골퍼가 드라이버를 들고 티박스에 선다. 티 위에 흰 골프공을 올려놓고 몇 차례 연습 스윙을 한다. 이어 힘차게 샷을 하면 ‘탁’ 하는 금속성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골프공이 창공을 가르며 힘차게 솟아오른다. 공이 목표 방향으로 가면 이처럼 기분 좋은 일이 없다. 그러면 사방에서 “굿샷” 소리가 들린다. 이 맛에 골프를 치는 모양이다.
하지만 골프는 인생처럼 모든 게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 헛스윙을 해도 1타를 친 것으로 간주한다. 오른편이나 왼편으로 날아가 공을 못 찾기도 한다. 목표 지점 근처에는 모래 구덩이와 연못 같은 장애물도 있다. 마지막 끝내기 퍼팅에서 속상할 때가 많다. 불과 3 정도 앞에 있는 홀 컵에 공을 보냈는데 몇 센티미터 앞두고 공이 서거나 비켜나갈 때가 비일비재하다. 속상하다고 골프채를 내던지거나 욕설을 내뱉는 골퍼도 있다. 그러기에 “클럽이 인격을 만들고 코스가 골퍼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은 내가 친공이 제대로 맞지 않아 불과 십 여 미터 앞에서 멈췄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라는 탄식이 나왔다. 그랬더니 팀원들은 “I go”로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내가 골프가 안 돼 집으로 가겠다는 말로 알아들었는지 “I go?”라고 심각하게 되묻는다. 나는 안타까울 때 내는 한국어 탄식이라고 바로 해명을 했다. 해리 바든은 “골프는 아침에 자신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저녁에는 자신을 잃게 하는 게임” 이라고 말했다.
왜 골프를 칠까? 무엇보다도 건강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K목사님은 목회 중에 쓰러졌는데 의사가 치료를 위해 골프를 권했다고 한다. 목사님은 링거 백을 차고 골프를 치는 열정을 보인 끝에 건강을 회복했다고 한다. 걷기나 수영, 자전거를 타다 보면 지루함을 느낀다. 하지만 골프는 늘 긴장과 좌절, 그리고 작은 희열을 느끼게 한다. 더군다나 미국의 골프 비용은 한국보다 저렴하고 예약도 쉽다.
골프가 주는 장점 중 하나는 처음 만났어도 함께 18홀을 돌고 나면 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에는 30대 청년 세 명과 함께 18홀을 돌았다. 골프가 아니면 70대에 들어선 내가 젊은이들과 4시간 반이나 이야기하고 헤어질 때 사진도 함께 찍을 수 있을까?
내가 다니는 리버뷰 골프장은 오렌지카운티의 5번과 22번 프리웨이가 만나는 근처에 있다. 독특한 지형을 갖고 있고 조금 협소한 곳이다. 1966년에 산타아나강의 1.5㎞ 정도의 구간을 골프장으로 조성했다. 역사가 50년이 넘는 곳이다.
남가주에는 비가 별로 오지 않아 강이라고 하나 평소에는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다. 양쪽 제방에서 하천 모래까지의 지형을 이용해 골프 코스로 만들었다. 그래서 다른 골프장에 없는 20 정도의 언덕이 몇 군데 있다. 나는 이 언덕을 백마고지라고 부른다. 골프장 중간에 폭이 5 정도의 길게 흐르는 하천이 있어 도강할 때 공을 간혹 빠트리기도 한다. 한쪽 제방 근처에서 공을 쳐서 ‘V’ 하천 계곡을 넘어 약 200야드 떨어진 다른 제방 위에 있는 그린 지역에 공을 안착시켜야 하는 코스도 있다.
시니어 골프 회원이 되고 나서 집 뒷마당을 미니 골프 연습장으로 만들었다. 잡초를 억제하는 검은 천과 녹색 인조 카펫을 깔았다. 한쪽 울타리에 네트와 타깃 천을 치니 훌륭한 골프 연습장이 되었다. 피칭, 치핑, 퍼팅은 괜찮지만 드라이버 연습은 조심스럽다. 골프장에선 연습공 한 버킷 105개가 13달러니 돈도 절약이 된다.
올해 목표 가운데 하나는 내 골프 실력이 시니어 클럽 평균 핸디인 14에 도달하는 것이다.
윤덕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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