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주인 없는 ‘한인 대표 기업’ 타이틀
그런데 지난해부터 대회 이름이 달라졌다. 새 대회 명칭은 ‘JM 이글 챔피언십’. 한국 기업 대신 JM 이글이라는 플라스틱 파이프 제조 업체가 대회 스폰서를 맡았다. 자연히 한인 팬들을 겨냥한 홍보에도 온도 차가 생겼다. 그래서인지 한인 골프 팬들의 관심도 많이 식은 듯하다. 한인 골프 팬들에게는 축제 같은 행사였는데 다른 한국 기업이나 한인 기업이 스폰서를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론이 길었던 이유는 JM이글이 대만계 미국인이 창업한 기업이라는 설명을 위해서다. 플라스틱 파이프 제조 분야에서 미국 내 1위 업체다. 어떤 업종이건 업계 최고가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자의 끝없는 도전을 이겨내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곧 미끄러진다. 아시아계가 창업한 기업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일단 ‘업계 1위’라는 타이틀을 달면 얻는 것도 많아진다.
그러고 보니 대만계 기업인 가운데 알만한 인물들이 꽤 많다. 요즘 주식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업체가 그래픽 처리 장치 디자인 업체인 엔비디아(nvidia)다. AI(인공지능) 산업이 부상하면서 주가가 연일 고점을 찍고 있다. 그런데 엔비디아의 창업주 가운데 한 명으로 최고경영자를 맡은 젠슨 황도 대만계다. 대표적 중식 패스트푸드 체인인 판다 익스프레스의 창업주 앤드류 청도 출생은 중국이지만 대만에서 성장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대만 출신 기업인들이 ‘업계 1위’의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대만 출신 지인이 있어 대만계 커뮤니티의 투자와 비즈니스 특징에 관해 물은 적이 있었다. 당시 그가 언급했던 것이 공동투자와 동업이다. 지인들끼리 투자그룹을 만들고 동업 내지 협업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대만계가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새겨들을만한 얘기였다.
우리에게도 내세울 한인 기업과 기업인이 있을까? 안타깝게도 언뜻 떠오르질 않는다. 포에버21 이후 ‘미국 내 대표적 한인 기업’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기업이 없다. 이제는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굵직한 한인 기업들이 나올 만도 한데 소식이 없다. 너무 내부경쟁에만 몰입해서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안주해 버리는 것일까.
한인 경제가 성장하려면 큰 기업의 등장이 필요하다. 앞장서는 기업이 있어야 시장을 키울 수 있고 그 기업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경제 생태계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에서 대기업들이 하는 역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한인 경제권도 이미 이의 긍정적 효과를 경험한 적이 있다. 과거 의류업계에서의 포에버 21 역할이다. 당시 포에버 21은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어떤 업체에는 은인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포에버 21을 통해 기반을 닦고 성장한 한인 의류업체들도 많기 때문이다. ‘포에버 21’의 존재는 한인 의류업계에 긍정적 효과가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요즘 한인들의 창업에 대한 열기가 과거 같지 않다는 점이다. 경기 탓도 있겠지만 분위기 자체가 가라앉은 듯하다. 그렇다고 물길을 돌려 보려는 커뮤니티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연초에 한인 사회에 희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한인 영화인들이 각종 시상식을 휩쓸고 있고, 정계와 법조계 등에서의 활약도 돋보인다. ‘청룡의 해’를 맞아 경제계에도 미국 대기업의 상징인 ‘S&P 500기업’ 을 꿈꾸는 한인 기업인들이 나왔으면 한다.
김동필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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