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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선의 크리스마스

이재학 6.25참전동우회

이재학 6.25참전동우회

6·25 한국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4대 고지 전투의 하나로 전사에 기록된 것이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의 캐럴이 온 누리에 울릴 때 ‘크리스마스 고지’에서는 밤낮으로 국군과 중공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하늘에는 포연이 가득하고 땅에서는 흰 눈이 붉은 피로 물든 지옥의 불구덩이 같은 처절한 현장이었다.
 
전투는 1951년 12월 25일 시작됐다.  강원도 양구 북방 어은산 일대에 주둔하고 있던 중공군 1개 사단이 국군 제7보병사단 3연대가 점령하고 있던 1090고지에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이후 1090고지는 전투가 시작된 날에 맞춰 ‘크리스마스 고지’로 불리게 됐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날이었던 만큼 고지에 있던 국군들에게도 잠시나마 휴식과 평화의 시간이 됐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캐럴 대신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이 들렸고, 내리는 눈송이는 핏빛으로 변했다.  
 
그해 한반도는 치열한 전투로 인해 산야는 불바다가 됐다. 한반도에 크리스마스는 없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고지’ 전투는 12월 25일 시작돼 12월 28일까지 총 4일간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 전투에는 한국군 제 7사단과 중공군 제204사단이 한 고지를 두고 낮에는 한국군이, 밤에는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쳐들어와 차지하곤 했다. 중공군과 한국군은 밤낮없이 나흘 동안 계속해서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피의 전투를 벌였다.  
 
국군과 중공군은 수차례에 걸쳐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그야말로 혈전을 벌였다. 이로 인해 하얀 눈으로 뒤덮였던 고지는 적과 아군이 흘린 피로 물든 악마의 풍경화처럼 변했다.  
 
마침내 용맹스러운 우리 국군은 조국 수호의 결연한 의지와 희생, 강력한 화력의 지원에 힘입어 12월 28일 중공군을 격퇴하고 크리스마스 고지를 사수했다. 이 치열한 전투에서 아군 22명이 전사했고, 21명이 실종됐다. 이에 반해 중공군은 172명이 전사하고 5명이 포로로 잡혔다. 국군의 자랑스러운 승리였다.
 
6·25 전쟁 시작 이후 첫 4개월은 북한군과의 싸움이었지만 나머지 33개월은 압록강을 넘어 남침한 중공군과의 긴 전쟁이었다. 휴전회담이 한창이던 1951년,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로 설전을 벌이던 양측은 그해 11월 27일부로 조건부 잠정 군사분계선을 설정하고 30일간의 휴전에 합의했으나 중공군은 이 약속을 어기고 밤에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즐거워야 할 크리스마스도 상당히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엄청난 혹한도 힘들었지만, 더욱 큰 아픔은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출현으로  남북통일의 희망이 좌절됐다는 점이다.  
 
6·25 전쟁 당시 압록강까지 북진한 우리 국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토 통일을 코앞에 두고 눈물을 삼키며 후퇴해야만 했다. 다시 없을 좋은 기회를 잃은 것이다.  
 
또다시 크리스마스를 맞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그것이다. 우리에게는 남의 나라일 같지가 않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이 결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풍요 뒤에는 나라를 지키고자 피를 뿌렸던 호국 영웅들의 용기와 노력, 애국심과 희생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잠시라도 고개 숙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희생에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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