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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읽는 세상] 오페라로 빚은 도박

러시아 작가 도스토옙스키는 도박중독자였다. 그는 도박하려고 빚을 졌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썼다. 돈이 급한 나머지 헐값에 소설 판권을 팔아넘기기도 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작가로 우아하게 살 수 있었던 그는 도박 때문에 평생 돈에 쪼들리는 비루한 삶을 살았다.
 
도스토옙스키의 『노름꾼』은 평생 도박판을 전전했던 작가의 경험담을 담은 것이다. 주인공 알렉세이의 심리나 도박판의 풍경 묘사가 그렇게 리얼할 수 없다. 직접 경험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데, 특히 알렉세이가 도박판에서 큰돈을 연달아 따는 대목은 읽기만 해도 기분이 짜릿해진다.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는 이 소설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오페라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박판 장면이다. 알렉세이가 돈을 걸 때 음악도 숨죽인 듯 조용하게 흘러간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룰렛 기계의 움직임을 묘사한 야릇한 음향만 들릴 뿐이다. 사람들은 가진 것을 모두 거는 알렉세이의 대담함에 혀를 내두른다. 갑자기 장내가 조용해지고, 마침내 딜러가 숫자를 외친다. 그 순간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알렉세이가 돈을 모두 딴 것이다. 음악이 다시 시끄러워진다. 알렉세이와 사람들은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이 엄청난 행운이 가져다준 환희를 만끽한다.
 
도박꾼이 늘 그렇듯 마지막에 알렉세이 역시 무일푼이 된다. 친구가 저녁을 사 먹으라며 준 동전 몇 닢을 만지작거리며 전에 동전 몇 닢으로 대박을 터트렸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행운을 기대하며 도박장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프로코피예프는 단호하기 그지없다. 파국을 예고하는 오케스트라의 짧은 굉음으로 단번에 오페라를 끝내 버린다. “네가 생각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라고 말하듯이.



진회숙 /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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