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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아름다운 가족 잔치

방금 사돈들의 잔치에서 돌아와 이 글을 쓴다. 감히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가족들의 잔치였다. 나는 음식 솜씨가 없어도 해마다 추수감사절엔 터키를 굽고 가족들이 모두 우리 집에 모여왔었다. 올해는 갑자기 아들이 참석하기 어렵게 되어 모임을 포기하고 쉬어볼까, 생각하던 중에 딸의 시동생 부부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처음엔 단숨에 거절했다. 그 어렵고 불편한 자리에 조신하게 앉아있을 자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위네 집안은 가족들이 무척 많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딸이 그 많은 층층시하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몸과 마음고생이 많고 외로울 것 같아 응원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가겠다고 했다.  
 
장소는 Larchmont, NY이었다. 우리는 비교적 일찍 도착했고 천천히 이민 일 세대, 이 세대 그리고 삼 세대까지 모이기 시작하더니 거의 40명이 채워졌다. 가장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남자들, 여자들, 젊은이들 그리고 아이들끼리 모이게 되었다. 나이는 3살부터 82세까지 각각 자리를 따로 만들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워 나갔다. 호스트인 시동생은 뒤뜰에서 터키 두 마리를 deep fry하고 킹크랩, 돼지고기, 오리고기를 굽느라 분주하고 딸의 동서인 안주인은 사이드 디시로 스트링 빈, 버터넛 스쿼시, 케일과 석류알 샐러드, 스터핑과 파스타까지 계속 새로운 요리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다행히 날씨가 많이 협조해 주어 젊은이들은 뒤뜰 정원에 자리 잡고 마시기 시작했다. 누가 준비해 왔는지 스시, 사시미 두 판이 전채요리로 눈앞에 황홀하게 펼쳐졌다. 그 뒤로 김밥, 잡채, 모둠전, 두부전, 만두 튀김. 그리고 오색 떡판까지 온갖 한식의 향연이었다. 우리 일 세대에게는 큰 인기가 없지만 온갖 종류의 칵테일과 와인, 치즈와 크래커까지 보기만 해도 눈과 입이 행복했다. 이, 삼 세대들은 큰 부엌 아일랜드 주위에 둘러서서 건배하며 즐기는 모습에 생의 탱글탱글함이 마냥 부러웠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가자, 서로 자기소개를 시작하는데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여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 부부만 빼고 다 친인척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서로서로 사돈 간, 고부간, 동서, 형수, 제수, 처남, 처형, 처제, 매제, 매부, 형부, 매형, 제부, 아주버님, 이모, 고모, 사촌 등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촌수가 다 동원된 모임이었다. 사돈이란 몹시 어렵고 불편한 사이라 멀리할수록 좋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오늘 이 모임은 완전 서로가 서로에게 사돈 관계인 사돈들의 잔치였다. 이런 모임은 미국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사교적이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직위를 떠나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다. 절대 상대방에게 듣기 싫은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칭찬에는 매우 후하다. 요즘에는 미국에도 이민자가 많아 좀 덜하지만 내가 미국에 온 70년대만 해도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온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기억이 있다.  
 
갑자기 작년 추수감사절에 아찔했던 생각이 난다. 추수감사절 날 아침에 부엌에 내려와 보니 바닥이 물에 잠겨있었다. OMG! 부엌 싱크대 밑에 있는 파이프에 구멍이 나 밤새 물이 샜다. 그날은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이라 서비스맨을 구할 수도 없었다. 갑자기 그날 모임을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니야 어떻게 하든 한 번 해보자, 물도 있고 가스와 오븐도 있잖아.” 남편은 지하실에서 물을 날라오고 난 요리하고 구정물은 뒷마당에 뿌리면서 바쁘게 움직였다. 오후에 가족들이 다 모였을 때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추수감사절 만찬이 훌륭하게 차려져 있었다. 즐거운 만찬을 끝낸 후 아들이 설거지를 도우려고 물을 트니 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모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제 작년 추수감사절 사건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하나의 기적으로 기억된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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