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실종된 한인 유권자 등록 캠페인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그는 당시 미국 망명길에 오른 베트남 사람들이 모여 살던 휴스턴에서 자랐다. 와코의 배일러대와 뉴욕 포드햄대를 졸업하고 뉴올리언스에 있는 로욜라 법대를 마쳤다. 루이지애나의 한 성당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했는데 다시 휴스턴으로 돌아가지 않고 낯선 곳에서 인맥을 만들고 정계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50년이 안 되는 이민 역사를 가진 베트남 커뮤니티 최초의 연방하원의원(루이지애나 2지구)으로 역사에 남아있다. 그는 2009년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공화당 명함으로 출마해 당선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망명해 힘겹게 살아가던 베트남 이민자들에게 그가 큰 희망을 쏘아 올린 셈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대신 삼촌과 함께 시작한 힘든 이민 생활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는 베트남 커뮤니티에 여전히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그의 정치적 성공에는 개인의 능력도 있었지만 베트남 커뮤니티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다. 그는 베트남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강한 오렌지카운티도 휴스턴도 아닌 지역에서 당선됐다는 특징이 있다.
베트남 커뮤니티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일까?
LA카운티에 거주하는 1만여 명(연방 센서스국 통계 기준)의 베트남계 시민권자 중 투표 가능 연령대의 유권자 등록 비율은 무려 90%에 육박한다. 사실상 시민권자인 베트남계 성인 모두가 유권자 등록을 한 셈이다. LA카운티 선관위는 유권자를 인종과 민족 기준으로 분류해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센서스국이 취합한 통계다.
이런 결과는 베트남계의 경우 단기 체류보다는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투표가 커뮤니티의 목소리와 힘이라는 사실을 일찍 깨닫고 실천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식당과 미용실, 음료 가게에서도 투표용지가 쌓여있을 정도로 투표 참여가 생활화되어 있다. 가까이서 베트남계 주민들을 지켜본 한인이라면 모두 동의할 내용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한인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지난 10월 LA 한인축제 현장에는 ‘유권자 등록’ 부스가 보이지 않았다. ‘즐기려고 모인 곳에서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49년 축제 현장의 전통이 사라진 것이다. 그동안 한인들이 모이고 만나는 곳이라면 항상 등장했던 유권자 등록 캠페인이 이제는 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LA한인회도 관련 활동을 멈춘 지 오래다. 한미연합회 측도 다른 활동에 밀려 유권자 등록 운동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있다고 실토한다. 그도 그럴 것이 관련된 활동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예전 같지 않다. 혹시 이제 ‘이 정도 했으면 됐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갈 길은 멀다. 단지 한인 후보 몇 명을 당선시키는 것만이 정치력 신장은 아니다. 시민권을 얻었으면 당연히 유권자 등록을 해야 하며 반드시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이게 커뮤니티의 힘이다. 시의원, 주의원, 연방의원, 시장과 수퍼바이저들이 한인사회의 민원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팬데믹을 거치며 유권자 등록도 상당 부분 온라인으로 옮겨갔고 간소화됐다. 관련 비영리 단체들이 일상적으로 유권자 등록 활동을 하려면 지원도 필요하다.
한인 유권자 등록 릴레이를 위해 돈도 기부하고 시간도 기부하면 어떨까. 단체들이 함께 모여 목표를 정하고 선의의 경쟁도 해보면 어떨까. 한인 언론들도 동참해 유권자 등록을 커뮤니티 캠페인으로 확대했으면 좋겠다. 유권자 등록과 투표 참여는 정치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힘이 더 필요한 커뮤니티다.
최인성 / 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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