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마스의 땅굴 작전
유대교의 명절인 초막절이 끝나는 안식일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했다. 이스라엘 국민은 연휴를 즐기고 있다가 하마스에 허를 찔린 것이다. 철통 방어를 자랑하는 이스라엘의 대공 방어 시스템 ‘아이언 돔’도 하마스의 재래식 로켓포 5000여 발에 무력화됐다.
역사적으로 현대 전쟁은 대개 휴일 등 장병들이 휴가 또는 휴식을 취하는 동안 기습작전으로 시작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진주만 공습도 주민들이 잠들어 있던 일요일 새벽 감행됐다.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의 남침도 모두가 방심하던 일요일 새벽에 일어났다. 하마스도 이스라엘이 방심하고 있을 때 기습공격을 했다. 혹 중동에서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북한은 한반도에서 힘의 공백이 생겼다고 오판해 하마스식 기습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땅굴은 전쟁사에 자주 등장하는 전술이다. 과거 삼국시대에 중국의 당 태종은 고구려 안시성을 함락하기 위해 성 앞에 거대한 토산을 쌓았다. 이에 고구려는 토산 밑에 굴을 판 뒤 지하수를 흘려 기반을 허물어 적을 섬멸했다. 독일군도 2차 대전 때 지하에 숨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를 공격하기 위해 굴에 대량의 물을 퍼붓는 전술로 은폐 작전을 와해시켰다.
하마스 조직을 끝장내겠다는 명분으로 가자지구로 진격한 이스라엘 방위군도 땅굴 파괴 작전을 벌이고 있다. 이미 하마스가 구축한 땅굴 가운데 100곳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쟁 때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은 땅굴에 매복한 일본군에 발목이 잡혔다. 미군은 굴마다 수류탄을 던져 넣고 화염방사기를 쏘아댔지만 일본군이 끝까지 저항해 피아간에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6·25 때 중공군은 휴전선 일대에 총 길이 5000㎞의 땅굴을 팠다. 공습을 피하고 병력을 이동시키는 지하 만리장성이었다. 미 공군은 밤낮으로 폭격했지만 끝내 완전히 파괴하지 못하고 말았다.
미군은 베트남전쟁 때 신출귀몰하는 베트콩의 땅굴에 고전했다. 초대형 폭탄을 투하해도 밀림 깊숙이 자리 잡은 땅굴은 무사했다. 당시 한국군은 땅굴 입구에 연막탄을 피워 연기가 오르는 곳마다 철판으로 틀어막았다. 결국 베트콩들은 연기와 허기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투항했던 사례다.
이번 가자 사태를 계기로 ‘9·19남북군사합의’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우리 수도권 등 대도시에도 지하철을 비롯한 지하시설이 크게 늘었고, 북한에도 1만개 이상의 지하시설이 있기 때문에 가자지구 땅굴 전투를 교훈 삼아 한국군의 지하 전투 대비가 시급하다는 것이 군사전문가의 지적이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하마스의 땅굴을 뚫고 인질 구출 등 특수 임무를 수행 중인 이스라엘 정예부대의 작전이 주목되는 현재 양상이다
한국군도 북한군의 땅굴 작전을 경험한 바 있다. 북한군은 1970년대부터 비무장지대 전역에 걸쳐 모두 20개 이상의 남침용 땅굴을 굴착했으며 한국군은 이 가운데 4개를 발견해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땅굴은 재래식 전투에서 아직도 긴요하게 이용하는 작전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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