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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에드워드 버크 시카고 시의원

박춘호

박춘호

에드워드 버크 시의원은 한때 시카고 시의원의 상징이었다. 마이클 매디간 일리노이 주 하원의장이 일리노이 정치의 심볼이었다면 버크 시의원은 시카고 정치를 의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버크 시의원은 1943년생으로 시카고 남서부를 중심으로 하는 14지구 시의원을 1969년부터 2023년까지 연임한 정치인이다. 무려 54년간 14선을 하면서 시카고 최장수 시의원으로 군림했다. 그는 대부분의 임기를 시 재정위원장으로 일했다. 시카고 시청에서 돈이 관련되는 사항은 버크 시의원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붙은 이유다.  
 
그런 버크 시의원이 6일부터 시작되는 재판을 받게 된다. 혐의는 착취 등이 포함된 부정부패. 오랜 기간 동안 시의원으로 재임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그가 법정에 서게 된다. 그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법무법인 클래프터 & 버크는 재산세 경감 업무를 주로 맡았는데 이 곳을 거쳐야 시와의 비즈니스가 잘 된다고 알려진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이 법무법인의 클라이언트로 세금 관련 일을 맡길 정도였다. 시카고 시와 업무를 하고 있는 업체는 클래프터 & 버크를 필히 이용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2018년 11월 29일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시청의 버크 시의원 사무실을 급습해 관련 자료를 압수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미 그 이전부터 관련 증거를 수집해 오던 FBI가 추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당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실세 정치인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것이었다. 결국 한달 뒤 정식 기소됐고 법무법인에서 자신의 이름을 뺐으며 2023년초에는 시의원 재출마도 포기했다.  
 
그의 정치 시작은 다른 여느 시카고 정치인과 유사했다. 그의 아버지가 쿡카운티 경찰에서 시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그의 정치 운명도 시작됐는지 모른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현역 시의원일 당시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아들 버크가 지역구를 물려받게 됐다. 지역구를 물려받을 당시 버크 역시 시카고 경찰 소속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지역 정치를 잘한 탓에 지역구민들은 그의 아들이 마땅히 지역구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버크는 드폴대학에서 법학대학원을 수료했다. 또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역시 변호사인 앤 마리와 결혼도 했다. 후에 앤 마리는 일리노이 대법관에 올라 남편은 시카고 시의회 최고 실세, 부인은 주 사법부의 최고 자리에 오르는 보기 드문 기록을 쓰기도 했다.  
 
버크가 시의원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시의회 전쟁이라고 불린 사건 때문이다. 해롤드 워싱턴 시장이 재임하던 1983년부터 1986년까지 동료 시의원인 에드워드 브롤리약과 함께 ‘브롤리약 29’를 이끌었다. 이들 29명의 시의원은 백인들로 시카고 최초의 흑인 시장이었던 워싱턴의 각종 정책에 반기를 들며 대항했다. 버크는 시장이 제때 처리해야 할 업무를 않았다며 소송전도 벌인다. 당시 쿡카운티 검찰총장이던 리차드 M 데일리에게 시장을 업무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둘은 같은 법학 대학원을 다니며 카풀을 했을 정도로 친숙했던 사이로 이후에도 정치적 동지로 지내게 된다.  
 
버크가 시의회 재정위원장이 된 것은 1980년대였다. 시장이 여러번 바뀌면서도 버크의 권력은 녹슬지 않았다. 그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시카고 방식으로 불리는 처세술 혹은 권력 다지기 수법이었다. 시카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문학에도 박식함을 지녔던 그는 패션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시의원 임기 말기까지에도 현란한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수트를 즐겨 입었다. 단순한 수트를 입었을 때에는 알록달록한 넥타이를 매며 포인트를 줬다.  
 
그가 정계를 휘두를 수 있는 장악력을 지녔던 것은 동료 시의원들에 따르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 혹은 실세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었다. 예를 들어 재산세 경감 문제가 있으면 누구를 찾아가면 최대 경감액을 받아낼 수 있는지, 신인 정치인이 있으면 누구를 소개시켜줘야 자신에게 충성하는 정치인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정확하고 꼼꼼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출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에게 버크가 널리 알려지게 된 또 하나의 계기는 아이 양육권 소송이었다. 1996년 마약 중독자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흑인 여자 아이 ‘베이비 T’를 입양하게 된 버크 부부는 친모가 제기한 소송으로 전국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백인 부부가, 그것도 정계 실세인 백인 중년 부부가 흑인 여자 아이를 입양하고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친모와 벌이는 소송전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 충분했다. 결국 이 소송은 주대법원까지 올라갔고 버크의 손을 들어줬다.  
 
그가 이를 통해 얻은 것은 유권자들의 관심이었고 환대였다. 버크가 시의원으로 추진한 입법 활동도 있다. 실내 금연이 대표적인데 이는 그의 아버지가 폐암으로 일찍 사망하며 가족을 부양하게 된 개인적인 인연으로 실내 금연을 주도적으로 통과시키게 됐다고 알려졌다.  
 
시카고 최고 정치 실세의 마지막은 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마이클 매디간 전 하원 의장 역시 내년 초 재판을 앞두고 있다. 장기 집권을 통해 정계를 주무르던 실세들의 끝이 어떻게 정해질지 주목할 일이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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