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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세월 따라 멍들어도 늘 푸른 나무로

이기희

이기희

나이 들면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가는 곳마다 불평 늘어놓고 파토 내는 사람, 나설 자리도 아닌데 앞장 서 고군분투 하는 사람, 혼자서 북치고 나팔 부는데 따르는 군중은 없는 사람. 반면에 낮아지고 작아 보이지만 가만히 있어도 작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사람, 자기 주장에 매몰되지 않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나이 값 대신 연륜과 경험으로 격려하고 다독여주며 잘 익은 포도주처럼 달달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한창시절에는 그런대로 잘 나가던 사람이 나이 들면서 해괴망측해져 과대망상에 빠져 설 자리 앉을 자리 구별 못할 지경에 이른 사람을 종종 본다. 근본적인 원인은 ‘젊을 때 한가락 했다’는 영웅심리의 뒷북치기로 과욕을 주체 못해 노욕에 이르게 된 까닭이다.
 
노욕(老慾)은 인간의 3대 욕구인 식욕, 물욕, 정욕보다 더 추하다고 말한다. 노욕은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때, 분수를 모르는 탐욕에서 출발한다.
 
공자는 ‘논어 계씨편’에서 군자가 경계해야 할 세가지를 ‘젊을 때는 혈기가 안정을 못 찿으니 여색을 경계하고, 장성해서는 혈기가 왕성하니 싸움을 멀리하고, 늙으면 기가 쇠약함으로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한국사람은 감투쓰기를 엄청 좋아한다. 감투가 성공의 월계관이 되기는커녕 낙인으로 찍혀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는 사람을 본다. 명칭이 유사한-혹은 같은 단체로 다른 이름인-단체장을 맡기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하던 분을 기억한다. 양쪽 다 지지하는 숫자 늘리려고 수십통의 이메일을 보냈는데, 자기편 만들려고 정성 들여 이메일 보낸 분은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었고 결국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위대한 성취나 직함보다 떠나기 전 가족들과 좀더 편안하고 다정한 시간 보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노욕의 원천은 과거지향적인, 철 지난 영웅심리에서 출발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회상하며, 맨손으로 파리 잡던 시절을 멧돼지 잡는 영웅전기로 둔갑시킨다.  
 
젊은 시절 꽤나 괜찮던 사람이 현재 상황이 흡족하지 못할 경우, 횡설수설 돈키호테식 무용담으로 주변을 피곤하게 한다. 무너져내리는 자신의 존재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노인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멈출 때와 돌아설 시간을 알면 사는 게 수월해진다.
 
‘즐거웠던 그날을 돌이킬 수 있다면’라는 노래를 자주 즐겨 부르면 꼰대로 등록된다. ‘물레방아간 첫사랑’의 처녀는 이미 할머니가 됐다. 과거는 흘러갔다.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는 허공을 향해 부르짓는 메아리다. 잘난 체 있는 체 허세 부리지 말고 눈치 빠르게 커피값이라도 재빨리 계산하는 게 어른 대접 받는 묘수다. 현재에 충실하고, 자기 생각보다 경청하는 귀를 가지면 꼰대의 허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앙드레 지드는 ‘늙기는 쉬어도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고 했다. 수양버들은 꺾이지 않고 산들바람에도 나부낀다. 두 팔 길게 늘어트리고 미소 지으며 손짓한다. 가을 잎이 바람에 흩날린다고, 휘영청 늘어진 가지 버리고 떠나가지 않는다.
 
아름드리 큰 고목나무 아래 삼만이 아재가 대나무를 엮어 만든 평상에 누워 수없이 반짝이는 별을 셌다. 별을 헤는 유년의 밤은 아름다웠다. 가마솥처럼 찌는 여름날엔 나물 캐서 돌아온 옥이언니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고목나무 아래 비스틈이 누운 광주리로 떨어졌다.
 
고목은 늙지 않는다. 오래 살고 있을 뿐이다. 기억하고 되새김 할 그리움이 많은 사람은 혼자 슬며시 웃는다. 기억의 바다에는 피라미, 송사리, 미꾸라지들이 줄지어 헤엄친다. 내일이 세상 끝이라 해도, 늘 푸른 나무로 사는 사람은 오늘 희망의 씨를 뿌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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