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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돌아갈 고향 없는 디아스포라

‘날아라. 상념이여 빛나는 날개를 타고
 
내 조국 산비탈과 언덕에 내려앉아라.
 
부드럽고 따뜻한 산들바람
 
코에 맴도는 감미로운 흙냄새…’
 
유명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의 첫 구절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3막에 나오는 이 아리아는 히브리 노예들이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조국을 향해 부르는 노래로, 디아스포라의 심정을 묘사한 대표적 노래로 꼽힌다.
 
길고도 끈질긴 유대인의 역사를 지탱해온 저력은 조국, 즉 고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디아스포라의 슬픔이 촘촘히 엮어온 역사다. 인류의 빼어난 예술작품들이 거기서 많이 탄생했다. 고향은 고난을 이겨내는 힘이요, 예술 창작의 원동력인 것이다.
 
내게는 그런 고향이 없다.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고향의 추억이 내게는 없다. 그래서 고향이 있는 사람들이 무척 부럽다. 고향 그리는 마음을 멋진 작품으로 빚어내는 이들이 정말 부럽다. 추석 때면 펼쳐지는 귀향행렬도 부럽다.
 
삼팔따라지의 후손인 내게는 그저 여기저기를 서럽게 떠돌던 단편적 기억만 생생하다. 어쩌다 한국에 가도 찾아가고픈 추억의 장소가 없다. 기껏해야 대학 때 단골로 드나들던 학림다방 정도다. 서글퍼진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무향민(無鄕民)’이라고 말하곤 한다. 마음 붙일 고향이 없다는 건 디아스포라에게는 결정적 약점이다. 정체성 확립에도 위태로운 걸림돌이다. 그래서인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같은 고향 그리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이 복잡해지곤 한다. 위로가 되기도 한다.
 
물론, 고향이 꼭 지리적인 장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결 더 간절한 것은 마음의 고향일지도 모른다. 가령, 어머니나 스승님처럼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존재…. 그래서일까, 어머니와 고향을 하나로 여기는 노래가 많다. 우리에게 친숙한 유행가에 그런 절절한 명곡이 많다.
 
“현해탄 파도 위에 비친 저 달아/ 찢어진 문틈으로/ 어머님 얼굴에도 비추어 다오”- 남일해의 ‘이국선(異國船)’
 
“어어이?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고향 하늘 아래/ 불효자식 기다리며/ 홀로 계신 어머님/ 떠도는 흰 구름아/ 고향산천 지나거든/ 몹쓸 놈 잘 있다고/ 어어이 어어이/ 전해주렴아”(이양일의 ‘내 고향 산울림아’)
 
‘뉴 노마드’라는 낱말처럼 현대인들은 대부분이 타향살이 디아스포라들이다. 낯선 땅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혼자 외롭게 살아간다. 태평양 건너 낯선 미국 땅 한 귀퉁이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미주 한인들도 같은 신세다.
 
조용필의 명곡 ‘꿈’은 그런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절절하게 노래한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줄임〉… 슬퍼질 땐 차라리 나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고향의 향기를 듣는다”, 향기를 듣고 눈물을 먹는다…. 참 깊고 절절한 표현이다. 이런 가사를 쓰고 노래한 조용필은 빼어난 시인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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