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나우] ‘세계 반도체 연구 연합’의 꿈
반도체라는 부품 산업은 미국 벨연구소에서 시작했다. 연구 목표는 1940년대 통신 시설이 소모하는 막대한 전력의 획기적인 축소였다. 지금도 반도체 산업의 총 매출은 5000억 달러에 ‘불과’하다. 통신 산업과 자동차 제조업의 6분의 1 정도다. 고용 인력도 200만 명으로 전자 산업의 8분의 1이다. 그런데도 전 세계가 반도체에 주목하는 이유는 ‘산업의 쌀’ 그 이상의 의미 때문이다.반도체 기술력의 차이가 곧 IT산업, 국방력 등의 차이로 연결되기에 기술 강국들은 반도체 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혈안이다. 지금은 한국·대만·미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지만, 유럽연합(EU) 국가들, 일본, 중국 등도 반도체 산업에서 꼭대기를 차지하려고 다툼이 치열하다.
치열한 기술경쟁과 천문학적인 개발비용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은 다른 산업에는 없는 특징이 돋보인다. 첫째, 반도체 산업은 반도체소자의 집적도가 2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에 따라 발전했다. IBM·인텔 같은 기술 선도 주자가 로드맵을 따라가려고 무리해 투자하다가 1등 기업 자리를 내주다 보니 ‘1등의 저주’란 말도 나왔다.
둘째, 여러 경쟁사가 자금과 인력을 모아서 공동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미국의 세마텍(SEMATECH)과 벨기에의 아이멕(IMEC)이 있다. 제조기술 중심이던 세마텍은 참여기업이 줄어들면서 2016년 폐업했다. 아이멕이 유일하게 생존한 국제반도체 공동연구기관이다. 아이멕이 살아남은 것은 세마텍과 달리 기업에 필요한 기술을 수탁을 받아 연구하는 형태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지난 50년간 반도체 기술은 공통의 로드맵을 기반으로 글로벌 경쟁과 협력을 통해 발전했다. 최근 각국이 앞다투어 반도체산업 ‘내재화’(생산의 전 과정을 자국 기업이 수행)에 나서면서 협력이 약화하고, 기술 발전이 현저하게 늦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예상되는 문제점이 심각하다. 반도체 기술의 효율성을 1000배 이상 개선하는 신기술 개발에 각국과 각 기업이 협력하지 않는다면 향후 전기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소모할 IT기술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없다. 글로벌 에너지 절감, 친환경기술의 구현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 기업 간 이해에 기반을 둔 협력 모델은 유효기간이 끝났다. 전 지구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미래 반도체 기술을 효율적으로 개발하려면 새로운 국가 간 협력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칩4 동맹’같이 근시안적 이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20년 후, 40년 후의 미래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는 ‘세계반도체연구연합’을 결성해야 한다는 화두를 풀자.
이병훈 /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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