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리 손 교육가, 한인 교육자들의 교육자…후배 양성의 귀감
‘교육계 대모’로 40년간 헌신
봉사·교육의 참뜻 후세에 전해
아시안 권리옹호에도 앞장서
40여년 간 교직에 몸담으며 한인 교육자 양성에 앞장섰던 메리 리 손 여사의 생전 별칭이다.
지난 2010년 별세한 후에도 유가족들이 조의금 대신 장학금 기부를 받았을 정도로 후학들을 위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 새미 리 박사의 누나이기도 한 그는 다문화 교육과 아시안 인권 개선의 선구자로도 칭송을 받았다.
지난 23년간 ‘3가 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수지 오 박사는 메리 손 여사와 한인 교육계 초창기 시절부터 함께했다.
오 박사는 “메리 손 여사는 나에게 대선배이자 멘토이며 동시에 절친한 친구였다. 1970년대 중반 메리 손 여사를 처음 만났을 때 한인 교육자는 고작 5~6명뿐이었다. 1975년 당시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새내기 교사인 나에게 꼭 한인 교장이 되라며 꿈을 심어주셨다”고 회상하면서 “또 한인 커뮤니티만 교육자 협회 없다고 하셔서 1976년 손 여사 자택에 모여 한미교육자협회(KAEA)를 함께 설립했다. 당시 손 여사가 초대회장을 맡았는데 지금까지도 협회가 이어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 장학재단 세워 후학 양성
손 여사는 사회활동은 물론 아시안 권익을 위해 앞장서 목소리를 냈다고 오 박사는 기억했다.
오 박사는 “한인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USC에 입학한 대단한 분이다. 또 최초의 한인 소셜 워커로 일했고 이후 LA통합교육구(LAUSD)에서 ESL 교사부터 장학사까지 근무하며 75세까지 열정적으로 교직에 임하신 뒤 은퇴했다”며 “1974년 손 여사는 교사를 위한 아시안 문화를 다룬 보충 자료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후에 전국에서 이중언어 교육과 다문화 교육에 대한 바탕이 되기도 했다. 또 당시 주류사회에서 차별대우를 받던 아시안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고 말했다.
손 여사는 모교인 USC에 ‘Mary Lee Shon Scholarship’를 세워 학생들을 도와주며 항상 커뮤니티에 환원하는 정신을 동료 교사들에게 가르쳐주었다고 오 박사는 전했다.
오 박사는 “손 여사는 자기 자신보다는 남을 도와주는 점에서 마더 테레사를 닮은, 그리고 사회 정의의 옹호자로서 마틴 루터 킹 박사를 닮은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 그녀는 ‘김치 외교관’
손 여사가 별세한 지 1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는 후세들이 많다. LAUSD는 윌튼 초등학교의 한 건물을 ‘메리 리 손 교육센터(Mary Lee Shon Education Center)’로 명명하여 메리 손 여사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특히 손 여사가 직접 만든 독특한 맛의 하와이식 김치가 기억에 남는다고 오 박사는 전했다.
그는 “손 여사가 김치를 집에서 손수 만들어 한인뿐만 아니라 타인종 친구들에게도 나눠주곤 했는데, 어떤 타인종 사람들은 그녀를 ‘김치 외교관(Kimchi Diplomat)’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 “당신의 가르침,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
그는 “그에게 배움을 받은 교사들이 손 여사처럼 모든 인종을 망라하여 젊은 교사들 양성에 힘쓰고 있다. 비록 지금 우리와 함께 있지 않지만, 손 여사의 정열과 사회봉사 정신, 그리고 삶에 대한 에너지와 뜨거운 교육열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이라고 말했다.
장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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