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김 교육가 “아시안 차별이 심하던 시절 법정 투쟁을 통해 권리 쟁취”
미주지역에서 잊혀지고 있는 이철수(1952∼2014)씨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프리 철수 리’가 한국에서 다음 달 18일 개봉한다. 1973년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 넘게 옥살이를 한 이철수씨의 석방 이후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한국에서 태어나 12세 때 어머니가 사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이씨는 1973년 6월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중국 갱단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억울하게 지목돼 구속기소 됐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 이듬해 백인 갱단원에 맞서다 살해해 일급 살인 혐의로 추가 기소돼 사형 판결을 받게 됐다. 이철수씨의 구명운동에 처음 앞장선 한인은 데이비스 고교에서 카운슬러로 일하던 그레이스 김(92) 씨다. 김씨의 남편인 UC 데이비스 의대 루크 김(한국명 김익창) 박사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이민자를 위해 봉사했다. 김씨는 함께 일하는 아시아계 청년들을 집에 초대해 저녁을 먹다가 이철수씨 사건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김씨와 친분이 있었던 새크라멘토 유니언 신문의 이경원 기자가 1978년 이철수 사건 취재기사를 쓰며 세상에 알려졌다. 이 기자와 김씨와 유재건 그 당시 법대 재학생이 주축이 되고 한인 2세, 한인 교포사회, 종교계까지 힘을 합쳐 구명운동이 시작됐다. 이씨 구명을 위해 거의 20만 달러가 넘는 돈이 모였고 유대인 변호사까지 힘을 합쳐 1983년 이씨는 마침내 석방됐다. 김씨는 “동양 사람 차별과 무시가 만연했던 그 당시 역사상 처음으로 동양 사람이 법정에서 싸워 이긴 케이스”라며 “미국 장로 교계, 중국, 일본 소수 민족 모두 발 벗고 도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제 치하를 피해 부모님이 이주한 상해에서 1931년 출생했다. 서울대 사범대학을 나와 숭의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일하다 남편 루크 김 박사를 따라 미국에 왔다. 데이비스 고교에서 카운슬러로 일하면서 UC 버클리에 아시안 아메리칸 이중언어센터 창립 지원, 데이비스 아시안협회 창립 주도, 새크라멘토 한인회장, 한미연합회(KAC) 부이사장으로 등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을 펼쳤다. 24년간의 교사 생활에서 은퇴한 김씨는 은퇴하는 남편 루크 김 박사와 함께 UC 데이비스 의대에 재산을 기부해 부부의 이름을 딴 ‘루크 앤 그레이스 김 석좌교수’직이 신설됐다. 김씨 부부가 기증한 25만 달러와 UC 데이비스 의과대학이 출연한 100만 달러의 기금으로 후진 양성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이다. 김씨는 “정신과 의사인 남편이 환자의 문화와 역사 배경을 알아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느껴 문화 정신의학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2006년 남편과 OC 실비치 실버타운 레저월드로 이주해 노년을 보내면서도 자원봉사와 기부 활동을 활발하게 했다. 김씨는 남편 김 박사, 이 기자와 함께 공동으로 초기 이민자 2세와 3세 구술 이민사를 집필한 ‘외로운 여정’을 영어(이경원 저)·한국어(장태한 역) 버전으로 출판했다. 또 실비치 한인회 창립, 다문화협의회, 교회 봉사, 문예부, 합창단과 고전 음악 교실,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활동도 펼쳤다. 2019년에는 소망소사이어티(이사장 유분자)가 수여하는 ‘제2회 소망 웰 에이징 어워드: 아름다운 삶의 여정상’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장남인 데이비드 김씨는 2009년 연방 교통부 부차관보를 역임했다. 김씨는 “한인 2, 3세들이 정계로 더 많이 진출해 목소리를 내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유니크하게 코리언 아메리칸으로 살아야 한다”며 "정직하고 책임감 있게 살고 남과 나누고 사는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영 기자그레이스 교육가 데이비스 의대 데이비스 고교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