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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별의 노래, 동심초

남편의 마지막을 보살피던 친구는 생전에 네 것, 내 것 가리면서 까칠하게 굴었던 남편이 모든 것을 그녀에게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떠나갔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친구는 금생(今生) 보다 전생(前生)과 보이지 않는 끈이 삼라만상 안에 우리를 묶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친구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삼라만상이라…. 사전을 찾아보니 수풀 삼(森), 그물 라(羅), 일만 만(万), 코끼리 상(象), 네 글자로 만들어진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심오한 뜻이 있어 보였다. 나무 목(木)자 세 개가 함께 하는 것으로 보아, 울창한 나무숲을 뜻하는 것 같다. ‘빽빽한 나무숲에, 만 마리의 코끼리가 망에 갇혀 있다?’ 무척 답답한 형상이다. 그것이 우리 생이란다.  
 
친구는 한 줌의 재로 남은 남편을 흰 항아리에 넣어서 비둘기 한 마리가 겨우 들락거릴 수 있을 만한 작은 공간에 놓아두고, 자리를 뜨면서 허무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남편과 함께했던 긴 시간 동안 사랑이라는 방정식을 잘 풀었는지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친구는 남편과의 이별을 그렇게 했다.  
 
지난 일 년 동안, 많은 부고(訃告)가 도착했다. 어느 때보다도 죽음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함께 가족으로 살았던 길고양이 두 마리도 우리 곁을 떠났다. 세상을 뜬 친지들은 코비드19 때문에, 코비드 백신 부작용으로, 암 때문에, 또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이생을 떠나서 가야만 하는 다음 세상이 어디인지 모른다. 모르니까 흔히 이터니티(eternity)라 하고, 이를 영겁의 곳, 영원한 시간이 있는 곳 정도로 얼버무린다. 그런 테마를 갖고 쓰인 자서전적 책, 소설, 영화, 드라마도 심심치 않게 부상한다. 요즘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이 천당이나 지옥에 안착하기 전에 거쳐야 한다는 중간 지점, 연옥에 있다가 다시 깨어난 후에, 이생과 그 중간 지점을 넘나들고 살면서, 악귀들을 잡아 영원히 가둔다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허상인 것을 알면서도 시청률이 높은 것은 단순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되돌아보면, 부모님 세대의 어르신들은 집단적인 이별을 많이 겪었어야 하는 팔자였던 것 같다. 일제 강점기에 4개의 전쟁을 겪었고 그 이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까지….이별의 괴로움으로 늘 가슴이 아팠던 엄마는 아픔을 삭여 보시려고 그랬는지, 평생 우울을 되씹으며 사셨다. 우울은 괴로움을 그리움으로 덮었고, 죄 없는 엄마는 그리움이 죄인 양, 이에 대한 보속(補贖)을 연일(連日) 하셨다.  
 
하루 중에 엄마가 가장 괴로워했던 시간은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이었다. 손위 형제들이 집을 떠난 후라, 거의 혼자 자라다시피 했던 나는 우울한 엄마에게 싸이코테라피스트 역할도 했다. 그런 시간이면 엄마가 좋아하는 신청곡을 받고, 독창을 하곤 하였다. 많은 레퍼토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엄마는 ‘동심초(同心草)’라는 가곡을 자주 듣고 싶어 하셨다.  
 
‘동심초’는 ‘산유화’, ‘이별의 노래’, 동요 ‘잘 자라 우리 아가’로 우리에게 친근한 김성태 작곡가가 만든 가곡으로 6·25 전쟁 이후 소개된 곡이다. 가사는 순수 한국 시가 아니고 7세기 중국 당나라 시를 김안서 시인이 번안(원작의 줄거리나 사건은 그대로 두고 풍소, 인명, 지명등을 작기 나라에 맞게 바꾸어 고치는 것)했던 것이라고 한다. 김안서 시인은 1950년 납북된 언론인이며 작가이다. 오산학교 교사를 지냈고, 김소월의 스승이었으며, 타고르의 ‘키탄잘리’를 번역하기도 했다. 1950년 납북된 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많은 정보가 없다.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 한국민족의 슬프고 어두운 역사의 한 부분이다. 참고로 신사임당이 작사자라는 것은 낭설이다.
 
‘꽃 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동심초(同心草)’란 같은 마음을 나누는 종이(草)라는 뜻으로 현대말로 표현하자면 ‘러브레터’이다. ‘풀 초(草)’가 들어간 것은 종이는 풀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가사가 여류시인인 설도(薛濤)가 쓴 춘망사(春望詞, 봄날의 바램)‘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명이 2017년 1월 5일자, 새만금일보 ’동심초는 과연 풀이름인가‘라는 정복규 기자의 글에 자세히 발표된 바 있다.) 정기자는 김억(김안서)가 했던 말, ’시의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창작‘이라는 내용도 곁들였다. 내가 보기에도 ’동심초‘ 가사는 원문의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 창작 같아 보인다. 나도 이 분석을 읽을 때까지, 동심초는 꽃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동심초‘ 노래를 불러 드릴 때, 엄마의 그리움을 잘 표현하려고, 꽃이 바람에 지는 것을 상상하면서 멋을 부려가며 노래하곤 했다. 번역이 아닌 번안한 말들이었기에 오히려 다행이었던 것 같다. 애절하고 충분한 위로의 말들로 이어졌던 노래이었다. 다시는 이생에서의 만남이 없을 이별이었건만, 떠난 이와 같은 마음을 보이지 않는 종이에 써서, 바람에 날려 보내곤 하셨을 것이다. 친구도 그가 남편과 함께 이루었던 사랑을 방정식으로 써서 지금 바람에 날려 보내고 있지 않을까. 

류모니카 / 종양방사선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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