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회고하다
링컨센터 1960년대 특별전 상영작 <상>
세련·감각적인 연출의 ‘하녀’
봉준호·박찬욱 등에 큰 영향
몽환적 이미지 가득한 ‘춘몽’
한국 표현주의 영화 대표작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마부’
현대의 가치관 충돌로 주목
링컨센터 필름 소사이어티와 한국영상자료원 그리고 영화전문 큐레이터 ‘Subway Cinema’는 9월 1부터 17일까지 링컨센터에서 ‘한국영화의 황금기: 1960년대(KOREAN CINEMA'S GOLDEN DECADE: THE 1960s)'라는 제하의 특별전을 공동 개최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기인 1960년대에 발표된 24편의 영화들로 구성된 이번 특별전은 해외에서 개최되는 한국영화 행사로는 최대 규모다.
1960년대는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영화산업의 기반이 마련된 시기이다. 이 10년 동안 김기영, 신상옥, 유현목, 김수용, 이만희와 같은 감독들의 문제작들이 대거 발표됐다. 멜로드라마, 시대극 액션, 공포, 전쟁, 괴수 영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에서 한국영화는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군사 독재의 엄격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 영화는 예술의 한 장르로 성장했고 대중문화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했다. 독재정권의 압력과 제도와 절충하면서 혁신적인 영화의 중흥을 이루어낸 60년대 한국영화의 대표작들을 2주에 걸쳐 소개한다.
▶하녀(The Housemaid·김기영 감독·1960년)
'한국의 알프레도 히치콕' 김기영 감독의 걸작. 결혼한 음악 교사 동식(김진규)은 방직공장에서 여공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동식을 두고 여공 경희(엄앵란)와 하녀 명숙(이은심) 그리고 아내(주증녀) 세 여자가 사랑싸움을 벌인다. 부유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흑백텔레비전, 인스턴트 커피, 피아노, 카레라이스 등이 등장, 계급 상승에 얽힌 욕망을 암시한다. 감정의 롤러코스터 '하녀'는 묘한 섹슈앨러티와 감각적이고 세련된 연출로 60년이 지났어도 오늘날 여전히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봉준호, 박찬욱과 같은 이후 세대의 감독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마부(The Coachman·강대진 감독·1961년)
한국전쟁 이후 현대화되어가는 도시에서 마차는 쓸모없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마부'는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말수레를 몰며 생계를 꾸려 나가는 홀아비 노인의 이야기이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따뜻한 공감으로 풀어낸 드라마다. 김승호가 연기하는 아버지는 급변하는 시대적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시대의 노인들을 대변한다.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전근대와 현실의 가치관이 부딪힌다. 1961년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으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해외영화제 주요 상을 수상했다.
▶고려장(Goryeojang·김기영 감독·1963년)
미신에 얽매여 사는 마을. 나이 70세가 되면 산 채로 업어다 버리는 폐습은 식량난에 봉착한 어쩔 수 없는 계율이다. 엄한 계율과 효심의 틈바귀 속에서 방황하는 우유부단한 구룡(김진규), 그가 어머니를 산골짜기에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지고 갔던 지게를 내던진다. 두려움과 탐욕, 미신으로 가득 찬 환경에서 인간성을 유지하려 애쓰던 시절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흠잡을 데 없는 정교한 세트와 강렬한 흑백 영상미가 돋보인다. 생명을 다해가는 인간의 집착과 본능, 비정한 인간들의 무지와 미신에 대한 이야기.
▶춘몽(An Empty Dream·유현목 감독·1965년)
한 남자가 치과에 갔다 요염한 자태의 한 여인과 마주친다. 두 남녀는 한 의사에게 함께 진찰을 받는다. 진찰대에 누운 남자는 마취 주사를 맞고 꿈과 현실의 몽롱한 경계에서 그 여성을 뒤쫓는다. 불과 몇 초간의 여배우의 뒷모습 전라 장면과 영화 전체에 흐르는 성적인 코드로 최초의 외설 논란이 일었던 작품, 대사가 거의 없고 몽환적 이미지로 가득하다. 관객 스스로 적극적 상상을 해야 이해되는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들의 나열과 꿈속의 세트가 신비롭게 느껴진다. 1960년대 한국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적 작품.
▶대폭군(The Goddess of Mercy·임원식 감독·1966년)
묘선공주(최은희)는 아버지 묘장왕(남궁원)의 폭정에 용서를 구하며 불교에 귀의한다. 그러나 병든 왕이 혈육의 눈과 손을 잘라 먹어야만 살 수 있다는 말에 공주는 의연히 눈과 손을 내놓고 죽어간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이 되어 승천한다. 대규모 전투 장면의 스펙터클과 부처의 법력을 특수효과로 표현하기 위해 당시로써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여됐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 제작.
▶대괴수 용가리(The Great Monster Yonggary·김기덕 감독·1967년)
한국의 첫 몬스터 영화. 고질라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과 한국전쟁과 분단에 대한 지정학적 상상력이 풍부한 우화로 평가받았다. 핵폭발로 탄생하여 6.25 때 북한군 침공의 육로 코스를 밟고 있는 괴수, 인왕산에 나타나 서울의 모든 사람들을 패닉에 빠뜨리는 용가리의 모습은 '김일성'을 상징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같은 시기의 일본영화 '대괴수가메라'(1965)로부터 포맷과 기술을 빌려왔다.
▶산불(Burning Mountain·김수용 감독·1967년)
차범석의 희곡 '산불'이 원작이다. 1950년대 초 한국전쟁 당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욕망을 다룬다. 전쟁과 강제 징용으로 남자들을 모조리 잃은 과부 마을에 북한 인민군 탈영병 규복(신영균)이 숨어든다. 남한군에 징집된 남편을 잃은 점례(주증녀)는 그와 관계를 맺는다. 남편이 북한을 돕다 사망한 사월(도금봉)도 규복과 정을 통하고 곧 규복과 점례와의 비밀을 알게 된다. 한계 상황 속에 놓인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인의 원색적인 애정 갈등은 결국 비극적 파국을 맞는다.
김 정 영화 평론가 ckkim2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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