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예술 창조의 정점은 생명 탄생
실제로 받아 읽는 이들에게 얼마나 보탬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좋은 공부가 되었으니 보람을 느낀다. 보내줄 말씀을 고르면서, 예술과 삶의 본질을 찌르는 말씀에 감탄하고 자극을 받는 때가 참 많았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기도 하고, 옷깃을 여미기도 한다.
가령 윤형근 화백(1928년-2007년)의 이런 말씀도 그렇다. “예술은 만드는 것이 아니요, 낳는(生)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든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생각에서 몸짓으로 해서 손으로 이루어질 때 그것은 그 사람이 낳는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의 미는 자연이 낳는 것이요, 인간의 미는 인간이 낳는 것이다.”
“예술은 낳는(生) 것이다”라는 말, 대단히 근본적인 뜻을 가진 말씀이다. 생명의 참뜻을 말하는 것이다. 흔히 예술 작품의 탄생을 산고(産苦)에 비유한다.
예술은 곧 생명이라는 생각, 우리 옛 선비나 예인(藝人)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난초를 그린다’가 아니고 ‘난초를 친다’고 하는 것이다. 새끼를 ‘친다’는 말과 같이 생명을 ‘낳는다’는 말이다.
위대한 예술가 중 가장 많은 명언을 남긴 사람은 단연 반 고흐일 것이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700통에 가까운 편지를 비롯해 가족, 친구 등 여러 사람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생각, 꿈, 삶과 예술철학을 빼꼭하게 담아 보냈는데, 그 안에 보석처럼 빛나는 말씀들이 너무도 많다.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고, 함께 생각해보자며 손을 잡는 명언들이다.
고흐는 죽는 날까지도 “자신의 그림은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인 자녀들을 돌보면서 가정생활을 하는 노동자와 농부의 소명보다 못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어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도 그런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지난 해, 어느 책에선가 책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자연스럽고 훌륭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윤형근 화백의 생명 존중보다 한결 적극적이고 종교적이다. 반 고흐는 ‘생명의 탄생이 예술적 창조의 정점’이라고 선언하고, ‘일상적인 삶의 거룩함’을 소중하게 강조했다.
그런 고흐는 안타깝게도 평생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생명 탄생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동생이자 예술적 동지인 테오의 아이, 즉 조카가 곧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너무도 기쁜 마음으로 ‘아몬드 꽃나무’(1890년작)를 그렸다. 아기방에 걸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림은 소원대로 아기방에 걸렸고, 고흐는 죽었다.
‘첫 걸음마’(1890년작)도 그런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아기의 첫 걸음마 순간을 바라보며 감격하는 농부 부부의 모습을 통해 ‘삶의 거룩함’을 노래한 이 작품은 고흐가 평생 스승으로 모신 밀레의 그림을 베낀 것이다.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이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소중하다는 믿음 자체가 거룩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상의 거룩함이나 종교적 영성의 세계를 추상미술로도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 관점으로 로스코 채플, 윤형근 화백의 작품,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바라보면 다른 세계가 열리는 느낌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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