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동포청장 간담회가 실망스럽다는 이유
한국 고위 인사들이 미국을 방문하면 꼭 챙기는 일정 가운데 하나가 간담회다. 대통령은 물론 국회의원, 일부 고위 공직자도 ‘동포간담회’를 갖는다. 한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는 목적이다. 그런데 열리는 간담회 숫자에 비해 실제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많지 않은 것 같아 실망스럽다.
얼마 전 LA를 방문한 이기철 재외동포청 청장도 동포간담회를 가졌다. 갓 출범한 동포청의 초대 청장이 해외 최대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이 청장은 LA총영사를 역임했다. 한인들의 요구 사항을 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이번 간담회는 질적으로 다를 것으로 기대했다. 동포 정책에 대해 내용 있는 질문과 답변이 오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여느 간담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인지 일부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실망스러웠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우선 지적되는 것이 질문자들의 질문 내용이다. 현안에 대한 것보다 겉도는 내용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는 본인이나 본인이 속한 단체 소개에 대부분의 질문 시간을 사용했다고 한다. 사전에 질문 내용을 조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라고 했다. 이런 질문자라면 본인이 왜 그 자리에 참석했는지조차 망각한 것이다.
이번 간담회 참석자들은 한인사회를 대표해 그 자리에 초청된 것이다. 주최자가 동포 정책을 총괄하는 공직자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문 내용은 개인이나 특정 단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한인사회를 위한 것이어야 했다. 굳이 본인이나 본인 단체를 알리고 싶었다면 추가 발언을 통해서도 가능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간담회 참석자는 50명 안팎으로 대부분 LA와 오렌지카운티, 샌디에이고 지역의 단체장이나 단체 관계자들이었다고 한다. 한인사회가 한국 정부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알만한 분들이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현안 관련 질문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의외다. 끊임없이 이슈화 되고 있는 문제들도 있기 때문이다.
수동적인 태도와 무관심이 영향력 행사의 좋은 기회를 날려버린 셈이다. 비록 ‘정다운 분위기’는 연출되지 않더라도 동포 정책 책임자를 만난 기회에 집요하게 묻고 대책을 요구했어야 했다.
현재 한인사회가 한국정부에 요구하는 것 중 가장 시급한 것이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 문제다. 한국 대법원까지 갔지만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그동안의 끈질긴 노력으로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해당되는 2세들에게는 여전히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당장 미국 내 취업에도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복수국적 허용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55세로 하향 조정하는 문제, 2세들의 한글 및 정체성 교육 지원 확대 등도 본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내용이다.
물론 재외동포청이 나선다고 해서 일시에 해결될 사안들은 아니다. 동포청 단독으로는 처리가 어려운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재외동포 관련 일은 한국 내 여론도 살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 청장은 한국 정부의 대외동포 정책 방향에 변화가 있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일방적인 관계에서 상호 ‘윈윈’할 수 있는 동반성장의 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는 불합리한 규정들에 대해 한인사회가 더 큰 목소리로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앞으로도 많은 한국 정치인들이 미주 한인사회를 방문하고, 그때마다 간담회도 열릴 것이다. 더구나 내년 초에는 한국 총선이 열린다. 한인사회를 위해 ‘정다운 간담회’는 잠시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동필/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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