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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허셜 남매

박종진

박종진

헨델이 그랬던 것처럼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으로 이주한 윌리엄 허셜은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시절 유명한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총 24곡의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바이올린 협주곡도 무려 7곡이나 작곡하여 명실공히 서양음악 대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다. 그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에도 능통하여 오보, 첼로, 그리고 오르간 연주자로도 명성을 날렸다.  
 
천체물리학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음악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가 인생 후반부에서 천체물리학에 큰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을 관찰했는데 그의 업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망원경을 이용해서 태양계의 일곱 번째 행성인 천왕성을 찾아낸 것이다. 사실 천왕성도 자세히 살피면 맨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너무 어두워서 그때까지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천왕성을 발견한 허셜 자신도 처음에는 배경별이거나 꼬리가 없는 혜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태양계의 행성으로 밝혀졌다.
 
그는 망원경을 만드는 일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자신이 직접 제작한 망원경으로 천왕성을 발견한 것은 물론이고 평생 총 400여 대의 망원경을 만들어 그 중 60대나 유럽의 여러 천문학자에게 팔았다.  
 
윌리엄 허셜에게는 띠동갑인 여동생 캐롤라인이 있었는데 그녀도 천문학자였으며 오빠의 작업을 많이 도왔다. 윌리엄이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찰하면 캐롤라인은 오빠가 구술하는 것을 곁에서 받아 적는 일을 했다. 사실 천왕성도 윌리엄 혼자서 찾은 것이 아니었다. 남매가 함께 하늘 구석구석을 뒤지다 발견했기 때문에 윌리엄은 누이동생과 함께 발견했다고 발표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여자들의 사회 참여가 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 캐롤라인의 이름을 빼버린 까닭에 윌리엄 허셜 이름만 남게 되었다. 윌리엄이 죽자 캐롤라인은 다시 독일로 건너가서 이번에는 오빠의 아들을 도왔다. 조카도 천문학자였는데 캐롤라인 고모와 함께 아버지가 남긴 자료를 정리하고 세상에 알리는 일을 했다.
 


허셜은 태양계도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류 최초로 알아냈으며 은하의 모양이 디스크처럼 생겼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토성의 위성을 두 개 찾아냈고 자기가 발견한 천왕성에서도 위성을 두 개 찾았다. 무엇보다도 허셜의 또 다른 업적은 자연광에서 적외선을 발견한 것이다. 허셜은 82세가 되던 해에 영국 왕립천문학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지만, 이듬해에 죽었다.
 
천왕성은 윌리엄과 캐롤라인 허셜 남매가 공동으로 발견했다. 영국 국왕은 그 공로로 윌리엄에게는 기사 작위를 수여했고 캐롤라인에게는 여성으로는 최초로 연봉을 받는 천문학자로 임명했다. 열 살 때 심하게 아픈 후유증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더니 성장도 멈춰서 평생 초등학생 키로 살았던 불우한 여성이었던 캐롤라인은 어머니의 반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 오빠 윌리엄이 영국으로 데리고 가서 성악과 수학을 가르쳤다. 오빠가 오르간을 연주하는 성가대에서 소프라노 독창을 맡기도 했다. 캐롤라인은 수많은 혜성과 성운(나중에 외부 은하로 밝혀짐)을 발견하여 그녀가 85세가 되던 해 여성으로는 최초로 왕립천문학회 명예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윌리엄 허셜이 천문학과 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천재라면 그녀는 여성 사회 참여의 선구자였다. (작가)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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