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핵폭탄이 사용된 날을 기억하는가?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은 초기엔 일본이 우세했다. 미군의 손실은 막대했다. 미국으로서는 무언가 특별한 조치가 필요했다.
미국은 1939년부터 핵 개발 연구를 시작했지만, 1942년 8월부터는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를 가동해 본격적으로 극비리에 원자탄 개발 및 제조에 착수했다. 프로젝트는 비밀 유지상, 또 전체를 누구도 알 수 없게 하기 위해 부분별로 워싱턴 DC를 비롯한 3개 주에서 분산 진행했다. 실전에 사용하기 위한 무기 운송 작전도 극비였다.
1945년 7월 16일, 샌프란시스코 헌터 포인트 해군기지에서 ‘중 순양함 CA-35 USS, 인디애나폴리스’(Indianapolis- 함장, 찰스 B 맥베이 3세 대령)호가 골든게이트 브릿지를 빠져나와 태평양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그 배에는 바로 원자탄에 주입될 핵심 요소인 64킬로그램의 ‘고농축 우라늄’이 비밀리에 탑재되어 있었다. 핵폭탄 외피(bomb shell)의 이동도 비밀리에 또 다른 운송 수단이 동원됐다.
중 순양함은 선체가 크기 때문에 스쿠르 소음도 커 적의 잠수함 공격에 취약하다. 그래서 항해 시에는 반드시 대잠수함능력을 갖춘 구축함 몇 척이 호위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맥베이 대령의 그 순양함은 노출을 적게 하기 위해 구축함 호위 없이 단독으로 항해하게 하였다. 목적지는 남태평양의 ‘북 미리아나제도(Nothern Mariana Islands)’의 티니언(Tinian)섬이었다. 그 섬의 미 해군기지에 비밀 화물을 무사히 전달한 인디애나폴리스함은 필리핀 레이테섬 쪽을 향해 출항하였다. 하지만 그때 바닷속 깊이 잠복해 있던 일본 해군 잠수함 I-58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했고 약 900명 승조원이 희생됐다.
1945년 8월 6일 새벽, 인류 최초의 핵폭탄 ‘리틀보이’를 탑재한 B-29, 슈퍼 포트리스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티니언 섬의 북쪽 활주로에서 이륙하였다. 그리고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 약 3만 1000피트 상공에서 길이 3, 3미터, 무게 4.7t이나 되는 ‘리틀보이’를 투하했다. 그 폭발력은 TNT 약 1만5000톤의 위력이었다. 그날 약 8만 명이 사망했고, 그해 12월 말까지 총사망자는 14만 명이나 되었다. 히로시마 인구의 거의 절반이 폭탄 한 방으로 숨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원자폭탄은 말 그대로 원시적 수준의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수소탄, 중성자탄 등으로 발전되어 있다. 세계 최강 파괴력의 핵폭탄은 구소련이 개발한 8미터 길이의 차르봄바(Tsar bomb)인데, 그 폭발력은 TNT 50메가톤으로 1개의 폭탄으로 4억 명을 숨지게 할 수 있다. 히로시마의 ‘리틀보이’ 폭탄의 3330배 이상 강하다. 현재 핵폭탄 보유국은 (2019년 통계) 러시아 (6600기), 미국 (6450기), 프랑스(300기), 중국 (290기), 영국 (215기), 그 외 파키스탄, 인도, 이스라엘 등이다. 북한도 이제는 핵보유국으로 봐야 한다. 만일 핵전쟁의 세계대전이 일어난다고 하면 인류는 전멸할 수도 있다.
강대국들의 핵무기 보유는 ‘핵전쟁 억제’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북한 같은 불량국가들의 핵 보유는 대단히 위험하다. 그동안 핵 감축 회담도 있었고, 실제로 핵 보유 수를 피차 줄이는 방법도 써 왔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핵보유국 수는 늘어날 것이다. 이 유일한 인류의 거주지, 지구 위에서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핵폭탄이란 것을 완전하게 제거, 폐기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김택규 / 트루쓰(Truth)역사문제연구회 대표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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