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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액션] KAPF ‘코리아의 평화를 위해’

지난 7월 27일, 미주한인평화재단(KAPF) 회원이며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 공동 사무총장인 베키밸코어는 워싱턴DC에서 열린 코리아 평화 집회와 행진에 함께했다. 서류미비자 합법화를 비롯해 이민자 권익 운동을 펼치는 NAKASEC의 벨코어 총장은 입양인이다. 그런 그가 코리아 평화 행사에서 연설했다.
 
“한인, 아시안 커뮤니티와 함께 일하는 나는 한국 전쟁으로 인해 삶이 극적으로 바뀐 입양인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한국 어린이 20만 명이 부모와 언어, 문화를 잃고 해외로 입양됐으며 나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혈육을 잃은 나는 10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들의 아픔에 함께한다. 그리고 남북 이산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 탓에 미국 내 한인 서류미비자들도 고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체포와 감금 그리고 추방의 위협 속에 살아가는 이산가족들이다.”
 
벨코어 총장은 이날 남북 이산가족과 서류미비자, 그리고 입양인들의 아픔을 하나로 묶었다.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모든 한인의 아픔을 외쳤다.
 
“미주 한인들은 이제 70년간의 과오를 씻어내라고 미국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우리 가족들을 더 이상 갈라놓지 말고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이 군사적 긴장과 대결을 내려놓고 평화를 이뤄야 한다.”
 


지난 3월 만들어진 KAPF는 ①한국과 전 세계에서 미군 지출을 줄여 미국 내 복지 향상에 힘쓰고 ②과도한 한미전쟁연습과 미국과 한국, 북한이 군비경쟁을 중단하고 ③평화협정 체결과 한국전쟁 종전선언, 평화를 위한 협상과 외교를 지지하며 ④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코리아와 세계를 만들기 위해 활동한다고 밝혔다.
 
KAPF는 비록 올해 새롭게 결정됐지만 역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4년 창립한 재미한국청년연합과 이어서 만들어진 한겨레운동재미동포연합(1987년 창립)이 KAPF의 뿌리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까지 코리아의 평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88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미군 핵무기 철거 서명운동을 펼쳐 10만 명의 서명을 받아 미 의회에 전달했다. 1989년 타민족 평화 운동가들과 함께 ‘코리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연대위원회’를 만들어 휴전선까지 임수경 학생, 문규현 신부와 함께 행진하며 국제사회에 한반도 분단 현실을 알렸다. 1989년과 1990년 유엔 앞에서 코리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15~22일 단식 투쟁을 벌였다. 1993년 한반도 핵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미국과 북한 정부에 촉구하기 위한 워싱턴포스트 광고비 모금 캠페인을 펼쳐 두 차례 광고를 게재했다. 1992년에는 ‘한 손은 조국, 한 손은 동포사회를 위하여’구호를 내걸고 커뮤니티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활동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1994년 NAKASEC을 설립해 전국적인 한인사회 권익 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권익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1세와 2세, 입양인 등 여러 세대 한인들이 코리아가 심각한 전쟁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에 KAPF로 다시 뭉쳤다.  그리고 새로운 평화운동을 개척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내 커뮤니티 운동과 코리아 평화 운동이 하나로 만나는 한인사회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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