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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자유’란 이름으로

이기희

이기희

확신은 교만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이 틀어질 지 모른다. 세상에 마음 먹은대로, 제대로 되는 일은 없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고 길을 잘못 들었다가 탄탄대로로 직행하는 일이 생긴다. 뜻밖의 일로 횡재를 만나고 골 때리며 죽자사자 기획한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참사를 당한다.  
 
나는 매일 산꼭대기에 올라가 ‘야호’를 외친다. 사실은 뒷마당으로 향한 데크로 나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감격의 하루를 맞는다. 반나절도 못돼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절망과 부질없는 힘 겨루기를 하지만 물러서지 않기 위해서다.
 
시집 가기 전까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불 속을 뒹구는 늦잠꾸러기로 어머니 등골을 쑤시게 했다. 새벽형 인간으로 개과천선 한 건 챙겨줄 사람이 없기 때문.
 
글 쓰는 일이 두뇌와 영혼의 노동이라면, 그림 그리기는 강인한 정신력과 육체노동, 체력과의 전쟁이다. 잡사로 힘이 빠지기 전,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일어나 작업을 시작한다. 마음이 백지처럼 욕심 부리지 않아야 정화된 시간에 신선한 작품을 그릴 수 있다. 마음은 요지부동이 아니라 헝클어진 실타래 같아서 아무리 풀어도 처음 시작한 매듭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작품이 잘 되면, 혹시 그랜마 모지스(Grandma Moses)처럼 되는 게 아닌가 나 홀로 감격하며 교만 떨다가 그림을 망쳐 금새 천상에서 추락한다.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여자로 살던 모지스 할머니는 76세에 그림을 시작해 101세까지 1600점의 작품을 그린 미국 국민화가다. 모지스는 살면서 체험한 모든 기억을 마법처럼 화폭에 담아낸다. 빨래하는 날, 한겨울 단풍나무 시럽 끓이기, 칠면조 잡는 추수감사절, 평범한 시골 사람들의 크리스마스 축제와 마을 풍경을 어린아이 그림처럼 단순하게 화폭에 담는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입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이죠”라고 그랜마 모지스는 말한다.  
 
시작을 꿈꾸는 삶은 늘 아름다운 소풍이다. ‘희망사항’은 높고 숭고한 가치가 아니라도 괜찮다. 하고 싶은 일, 꿈꾸던 작은 무엇을 시작하는 용기가 행복이다.  
 
뉴저지에 사는 둘째 딸이 어린 손주 둘 데리고 다니러 왔다. 집 떠난 자식은 내 새끼가 아니다. 달력에 동그라미 쳐놓고 오는 날을 기다리고 체크 마크 하며 가는 날을 셋다. 할머니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생활 방식,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이 다른 두 집이 한솥밥 먹으며 달그락 소리 안 내고 버티는 것은 기적 같은 사랑이다. 4월에 왔다 갔는데 두 달 만에 또(?) 왔다. “자주 올게요. 어머니 외롭지 않게”라는 말에 “난 정말 안 외로워. 자주 안 와도 돼”라고 소리칠 뻔 했다. 그들만의 리그에 매달려 얼마나 부대꼈는지 몸살 기운이 돈다.  
 
행복 지수는 순전히 개인 몫이다. 가정, 가족, 단체, 국가별로 통계 낼 수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다. 돈 벌 궁리, 사업 확장할 계획은 지나간 옛 이야기, 자식들에게 줄려고 근검절약 하는 건 가난한 바보행진, 착한 척, 잘 사는 척, 잘난 척, 이쁜 척, ‘척의 가면’ 벗고, 텃밭에서 싱싱한 채소 뽑아 건강식 해먹고, 사회적인 허울 좋은 올가미에서 벗어나 나를 위해 사는 소소한 즐거움.  
 
행복은 소리 소문 없이 자유란 이름으로 새벽을 연다. 자유는 이슬에 젖어 상큼한 향기로 다가온다. 떠나는 딸의 차를 향해 ‘자유’란 이름으로 손을 흔든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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