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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바다의 빛, 바다의 울음

고향은 두메지만 나이 들면서 바다가 곁으로 자꾸 다가왔다. 기회 있을 때마다 바닷가에 나갔고, 여름 휴가철에는 어김없이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방송사 특파원으로 장기 체류한 곳도 두 군데나 해안 도시였다.  
 
홍콩은 빅토리아 해를 해자로 두르고 보석처럼 반짝거렸고, 태평양의 배꼽 같은 로스앤젤레스도 길고 아름다운 해안선을 끼고 융성하고 있었다. 바다는 늘 거대한 수정체로 시야를 가득가득 채웠고, 살가운 바람은 살갗을 문지르고 폐와 뇌를 청소해 지친 심신의 생기를 살려내 주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여명에는 심부로부터 파토스가 치솟았고, 낙조가 현란한 수채화를 그려내면 그 예술에 홀려 무아의 지경에 잠기곤 했다.
 
방송사를 사직하고 자영업을 시작하면서는 아예 바닷가로 이사해 바다와 밀월기를 보냈다.  남 캘리포니아의 뉴포트코스트, 배산임수(背山臨水) 언덕의 거실에서 내려다보는 바닷가 경관은 대형 화폭이었다. 하늘이 코발트색이면 바다도 짙푸르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으면 덩달아 거무스름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면 회색으로 변해 물장구를 쳤고, 해무(海霧)가 짙게 드리우면 바다는 희뿌연 이불을 덮고 숨었다.            
 
 해변의 바위 턱에 걸터앉아 있으면 여기가 오늘에 재현된 ‘에덴’의 서쪽이라는 착각에 취하기도 했다. 뭍 쪽으로는 해송(海松)과 삼나무들이 촘촘히 도열해 있고, 아래로는 모래밭이 곡선으로 휘어지며 끝없이 달리고 있었으며, 육지의 가장자리는 바다의 혀가 부단히 핥아서 보얗게 씻어주었다. 그 위의 광활한 창공을 사다새와 가마우지, 갈매기, 비둘기, 제비들이 무정형으로 이리저리 바쁘게 날아다녔다. 큰 떼를 지어 군무를 춰도 서로 부딪지 않으니 자유와 질서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관이었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파도 부딪는 소리와 물결 이는 소리, 바람 소리와 어우러져 정교한 교향곡이거나, 불협화음이 뒤섞여 이루는 웅장한 화음처럼 들렸다. “신의 작품이다” 라는 탄성이 입안에서 우물거렸다.    
 


샌디에이고 쪽에서 샌프란시스코 방향으로 순양함급의 군함 한 척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검고 큰 선체에 여러 개의 포신을 사방으로 겨누고 있어서 괴물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망막에 닿자 시야는 급변해 군함색으로 물들고, 푸르던 바다의 색깔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하늘에서는 빛의 향연이, 바다에서는 검은 해신의 유령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거실로 돌아와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흉측한 어둠 속에서 띄엄띄엄 작은 불빛들이 가물거렸다. 밤바다의 풍랑과 무서움을 이겨내는 인간들의 의지가 아닌가. 그 형상 위에 동방에서 바다를 건너와 쭈그리고 앉아 있는 존재, 그 삶의 궤적이 겹쳐졌다. 내면에 잠재해 있는 나의 작은 세상은 바다의 빛깔과 바닷소리의 변주 속에서 흔들리는 작은 조각배였다.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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