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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배우 이순재, 완성을 향한 열정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존경할 이가 자꾸 늘어난다. 스승이 많아지는 셈이니 반갑고 즐겁고 고맙다.
 
이번에는 원로배우 이순재 선생이다. 88세의 나이로 지난 6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열연하여 큰 울림을 주었다. 이 공연을 계기로 최고령에 리어왕을 연기한 배우로 기네스북에 등재를 신청했다고 한다.
 
연극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바로 실감하겠지만,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저 구순을 바라보는 노배우가 무대에 서서 주인공을 연기했다는 정도의 일이 아니다.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하는 대작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시적 언어가 품은 향취와 문학적 진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원작을 각색하거나 압축하지 않고 무대에 올렸다고 한다. 그래서 공연시간이 무려 3시간 20분에 달한다.
 
배우들의 대사량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특히 리어왕 역의 대사량은 살인적인데, 구순을 앞둔 노배우가 그 많은 대사를 몽땅 다 외워서 연기했다는 이야기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존경스럽다. 더구나 리어왕 역은 절대 군주에서 정신을 놓은 미친 노인으로 전락하는 폭넓은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고 끝까지 이끌어가야 한다.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젊은 배우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순재 주연의 ‘리어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도 공연되었는데 전회차 전석 매진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며 호평받았다. 또한 지난해 12월에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연출하는 등 누구보다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쉼 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배우 이순재는 대한민국 연기 역사의 산증인이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 중에 서울대 연극반을 재건해 활동하며, 1956년 유진 오닐의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했다. 이후 67년째 쉴 틈 없이 연기해왔다. 그동안 출연한 영화도 100편 이상, 연극도 100편 이상이고,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제14대 국회의원도 지냈다.
 
평균 시청률이 59.6%에 달했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야동 순재’라는 별명을 얻으며 열연해 큰 인기를 얻으며 대중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국민배우’다.
 
이순재 선생은 젊은 세대들로부터도 진정한 어른으로 평가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후배들이 그를 존경하는 까닭은 완벽한 자기 관리와 완성을 향한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모범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 대우나 받으려는 것은 늙어 보이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순재의 후배 사랑도 각별하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연예계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 그는 “젊은 세대가 희망을 가지고 전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것이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라고 역설한다.
 
한국 연극계에 이런 스승들이 계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지난 2018년 요란했던 ‘미투 운동’으로 지도적 어른 여러 명이 날아간 뒤라 더욱 귀하게 빛난다. 이순재 선생보다 한 살 어린 연기자 신구 선생도 꾸준히 무대에 서며 모범을 보여 정말 고맙다. 이런 어른들 덕에 한국 연극이 튼튼하다.
 
명배우 이순재 선생이 열연하는 ‘리어왕’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이렇게 간접적으로라도 가르침을 얻을 수 있으니 정말 다행이다. 내가 제일 배우고 싶은 것은 완성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다. 연기에 대한, 작품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젊고 강하다. 존경스럽다.
 
“완성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완성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에 꾸준히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장소현 / 극작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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