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인생은 육십부터인데
히포크라테스는 의사지 예술가는 아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예술 작품을 남길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 생길 것이다. 그가 예술이라고 말한 것은 틀림없이 의사로서의 일을 지칭한 것일 거다. 왜냐하면 의술은 병을 고치고 목숨을 살리며 수천 년 동안 내려온 훌륭한 에술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직업을 통해서 예술품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은 아무렇게나 남겨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땀을 흘리며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80~90년을 산다고 할 때 적어도 60~70년이 지나야 그런대로 예술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겨우 60을 넘겼으면서 은퇴를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재정적, 사회적으로 직업을 갖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일찍 은퇴하면 직업을 통한 예술품을 남길 수가 없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나이 예순이 넘어야 세상만사의 이치를 깊이 있게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세상을 깊고 넓게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멋있는 예술품을 하나라도 만들 수 있을 텐데 일찍 은퇴해 버리면 어떻게 예술을 남길 수 있단 말인가!
요즘 한국 교회에선 40대의 젊은 목사들을 청빙한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의 평균수명을 80세로 볼 때 그 절반의 나이에 담임목사가 되는 것이다. 목사는 영적 지도자다. 마흔살을 겨우 넘긴 사람이 어떻게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젊어서 박력 있고 지적인 설교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참다운 영적 지도자는 될 수 없다. 그러다 보면 허둥지둥 목회를 하다가 나이 60을 넘기고 변변한 예술품 하나 남기지 못한 채 은퇴하고 마는 것이다.
며칠 전 40대 후반에 녹음한 내 설교를 들어봤다. 매우 지적 수준이 높은 장로님이 훌륭한 설교라고 칭찬한 것을 녹음한 것이다. 아름다운 낱말, 철인의 명언, 그리고 신학자의 학설이 고루 섞인 제법 짜임새 있는 설교였다. 지식인들의 귀를 즐겁게 해 줄 만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내 귀에는 학술적, 철학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신앙적으로는 그렇게 아름답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예순이 넘어 저술한 책 ‘생각하고 생각하며’를 다시 읽어봤다. 이 책은 학술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그런대로 잘 조화가 된 것 같다.
인생은 60부터다. 짧은 인생을 길게 사는 길은 예술을 남기는 일이다. 예술은 힘을 써야 하고 연륜을 쌓아야 한다. 모름지기 육체적으로 오래 살면서 영적으로도 값있게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짧은 인생을 예술과 더불어 길게 살아 보자.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증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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