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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대통령은 철저히 준비된 말만 해야

김병일 뉴스랩 에디터

김병일 뉴스랩 에디터

“규제라는 것이, 또 법이라는 것이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이냐 이렇게 인위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스위스 치즈와 스위스의 해물 시판을 할 때 식품보건당국에서 정한 기준을 충족하는지 검사하고, 또 그 기준이 충족됐다고 하는 것을 상품에 표시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이 식품이 안전한지를 스스로 점검하는, 거래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런 식품들을 구입하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식품 산업이 훨씬 발전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죠?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화자의 의도를 아시겠습니까? 규제나 법은 나쁜지 좋은지 정의하기 어렵다, 그래서 식품 산업이 훨씬 발전한다는 말인가요? 아니면 스위스 산 치즈와 해물은 철저히 검사하고 표시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한국 대통령실 웹사이트 ‘대통령의 말과 글’에 올라와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내용입니다. 파리 디지털 비전 포럼 마무리 발언을 그대로 적어 놓은 것인데요.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이런 중요한 행사장에서 거의 횡설수설하는 수준의 발언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해당 발언의 전문은 이곳( https://www.president.go.kr/president/speeches/JXcW3dx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살펴볼까요.  
 


 “우리가 자동차를 처음, 1900년 초기에 개발이 됐을 때 과거에 마차를 타고 다니던 도시생활에서 자동차가 나오면서 자동차의 성능이 점점 좋아져서 이것이 인명 사고를 유발하게 되니까 여기에 대해서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국가의 정부는 속도가 얼마 이상 나면 안 된다는 것으로 규율을 하는 정부도 있고요, 그래서 어떤 정부는 브레이크의 성능이 아주 좋아야 된다고 규율을 할 수 있습니다. 인명 피해를 줄이는 차원에서, 인명 피해가 생기면 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손해배상을 져야 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합니다. 그래서 속도를 내지 말라고 하는 건 자동차의 본질과 관련된 부분이고, 이건 자유와 관계된 부분입니다만, 브레이크의 성능, 브레이크의 테크놀로지를 올려라 하고 규정을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산업발전에 도움이 되고, 또 아울러서 거기에 책임보험제도라고 하는 것이 결합되면서 자동차를 편리하게 이용하고 자동차 산업이 다른 산업 부분에 전후방 연관 효과를 주면서 발전하게 됐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말인지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행사장에 있던 몇 명이나 윤 대통령의 말을 알아들었을까요? 분명 불어로 직접 말하지 않고 통역이 있었을텐데 통역자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어떻게 통역했을지도 무척 궁금합니다. 윤 대통령이 프랑스 다른 행사에서 준비한 원고를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입니다.  
 
윤 대통령은 디지털 문화 및 산업과 관련해 다양한 법적이고 규범적인 논의를 하는 국제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가 한 발언을 그대로 옮긴 활자체로 된 문장을 보면 윤 대통령의 의도가 드러나기 보다는 횡설수설, 중구난방과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 것은 왜 일까요. 즉석에서 보좌진의 원고를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연설은 본인이 직접 쓰기보다 디테일을 잘 아는 보좌진 손에서 초안을 만들어 최종적으로 다듬는 게 관행입니다. 이번에 이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던 겁니다. 물론 미국 바이든 대통령, 영국 수낵 총리,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 등 다른 나라 지도자들도 실언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지도자는 말 속에 사상과 철학과 가치와 전략을 담아야 합니다. 내뱉은 말의 파장이나 효과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지금까지 공식 비공식 석상에서 말 실수한 사례는 한 두건이 아닙니다. 외교적인 문제를 놓고 다른 나라로부터 항의를 유발한 경우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금보다 더 진중하게 말해야 합니다. 불안하고 좌절해 있는 국민의 가슴에 용기를 불어 넣고, 절망과 슬픔에 엎어져 있는 시민을 보듬을 수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국민의 귀와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는 진실성 있는 희망의 메시지로 가득해야 합니다. 미사여구보다는 간결함 속에 확실한 내용을 강조해야 합니다. 메시지 정치의 핵심은 철저하게 준비된 말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병일 / 뉴스랩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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