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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문화 사대주의와 한국인의 자신감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미술관과 박물관 관람을 중심으로 일정을 짜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한국 미술계의 현장을 직접 보고,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세계화 현상이었다. 세계적 문화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역동성이 곳곳에서 느껴져 고맙고 반가웠다. 최근 들어, 이른바 K-아트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한국의 미술시장이 급격히 커졌기 때문인지, 한국 미술판의 수준과 의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화 열망이 반드시 좋은 것, 바람직한가 하는 의구심도 강하게 들었다. 세계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너무 욕심을 내고 서두르다 보면 문화 사대주의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머문 5월 중순, 서울에서는 국공립 미술관, 사립 미술관, 상업 갤러리 할 것 없이 외국 화가들의 전시회가 압도적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서양에서 모셔온 꼬부랑 이름의 미술가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늘어놓아 보면, 에드워드 호퍼, 데이비드 호크니, 피카소, 마우리치오 카텔란, 알렉산더 칼더, 라울 뒤피 등이다. 그나마 외국 작가의 전시회도 이름만 요란했지, 내실은 허술한 전시회가 많았다. 대표작은 없고, 변두리 작품들만 잔뜩 늘어놓은 전시장…. 한국 작가로는 환기미술관의 김환기 특별전, 이우환 개인전, 한운성 개인전 등이 겨우 체면을 유지해 주는 정도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당황스러워서, 제발 우연이기를 빌었다. 내가 본 것은 잠시 한때의 일시적인 현상이기를 기도했다. 아무리 일시적 유행이라 해도 이건 심각한 문화 사대주의다.
 
이름난 외국 작가를 모셔 와야 대중들의 관심을 모을 수 있고, 관람객들을 불러 모아야 장사가 된다는 주최 측의 영악스런 계산도 물론 문제지만, 이름의 유명세에 이끌려 다니는 대중들의 의식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다행스럽게도, 6월에는 장욱진 개인전 등 한국 작가들의 전시회가 많이 열렸다. 내가 본 것은 일시적 현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외국 작가들에 대한 선망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문화 또는 정신의 사대주의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확고한 자존감 없는 세계화는 물거품이다. 진정한 K-문화, 세계화는 세계 사람들이 우리의 문화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일이지, 우리가 생각 없이 남의 문화를 흉내 내는 짓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선 내가 바로 서야 한다.
 
지나친 문화 사대주의에 대한 걱정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보인다. 외국 작가의 작품을 원화로 한국에서 감상한다는 으쓱함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나의 정체성과 자존감이다. 남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녀서는 평생 정상이 될 수 없다.
 
또 한 가지 아프게 느껴진 것은 미술관, 박물관의 겉모습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신축 개관한 국공립 미술관 박물관 건물들은 세계 최고 규모로 거창하고 으리으리 번쩍번쩍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거기서 우리 냄새를 맡는 편안함은 없었다. 어디 다른 나라의 새로 지은 미술관을 보는 낯선 느낌이었다.
 
한국적 아름다움의 정수를 보여줘야 할 국립중앙박물관 건물마저도 그랬다. 서글펐다. 사유의 방에서 신라시대 미륵반가사유상 두 분을 뵙는 것으로 겨우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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