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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역사 120년, 한인사회 100년 후를 생각해야죠"

"한인사회 역량, 차세대로 자연스레 이어져야"
"아메리칸 드림 위한 한인들의 노력 '존경'과 '감동'"
"한미동맹의 나아갈 길, VA역사 돌아보면 해답 있어"

 
 
 
주미한국 대사관 권세중 총영사를 만났다. 지난 3년간 워싱턴 구석구석을 누비며 동포사회 발전을 위한 지원과 협력에 열정을 쏟았던 권 총영사에게 워싱턴에서 근무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과 '가장 자랑스러웠던 장면'을 꼽아 달라고 물었다.  
 
권 총영사는 '인상 깊었던 장면'으로 "DC 우범 지역서 상상할 수 없는 위험을 각오하고 사업체를 일구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내는 한인 상인들의 노력"을 꼽았다. 그는 "플로이드 사건 이후 벌어진 DC 시위 사태 당시 큰 피해를 입었던 한인업소들을 방문했을 때, 어느 사장님께서 자신의 낡은 신발을 보여주며, '이 신발을 내일도 다시 신을 수 있을까라고 매일 생각하며,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이렇게 노력하는 한인 동포 여러분들을 위해 총영사로서 대한민국 외교관으로서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권 총영사는 '가장 자랑스러웠던 장면'으로 버지니아 로어노크 대학에서 열렸던 독립운동가 우사 김규식 선생의 공적을 기념하는 표지판 설치식을 이야기 했다. 김규식 선생의 표지판 설치는 컴벌랜드 중학교 학생들이 현지에서 공부한 아시아태평양계 인물을 연구하다가 김규식 선생의 행적에 주목하고, 로어노크대학에 추천하여 기념 표지판 인물로 선정되면서 이뤄졌다. "김규식 선생은 1897년 우리의 고교과정과 유사한 로어노크대학 예과에서 1년 수학 후 이듬해 정식 입학했고 1903년 우등으로 졸업했다"면서 "독립운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김규식 선생을 기리는 표지판이 한미동맹 역사에서 각별한 인연을 가진 로어노크 대학에 설치되는 순간이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밝혔다.  


 
설명에 따르면 조선의 운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로어노크대학은 걸음마를 뗀 한미관계에 씨앗을 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93년부터 1920년대까지 로어노크대학에 입학한 조선인들은 약 30명으로 걸출한 인물들이 배출돼 '한미관계'의 주춧돌이 된 것이다. 
당시 유학생으로는 의친왕 이강은, 갑신정변의 주역 서광범, 헤이그 밀사의 일원인 이위종의 형 이기종 등 다양하다.  
 
로어노크대학에 첫번째 유학생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은 서규병으로 1893년에 입학해 1898년 졸업했으며, 귀국해 인천부윤을 지내다 조선 병탄에 맞서 중국으로 망명했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은 오하이오에서 2년을 보내고 1901년 로어노크대학에 편입했다. 
이강은 귀국 후 3.1 만세운동에 이어 2차 만세시위를 위한 독립선언서에도 서명했으며 왕실의 체통을 끝까지 지켰다.  
이후 1965년 로어노크 시는 강원도 원주시와 자매결연을 맺어 로어노크 시에는 '원주 로드'가, 원주시에는 '로어노크로'가 설치되기도 했다. "당시 석탄 도시로 유명했던 로어노크 시의 역량이 감소하면서, 당시 가난한 국가의 소도시였던 원주는 현재 로어노크시에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지적한 권 총영사는 "양 도시의 우정과 협력관계의 모델은 군사와 안보위주의 한미관계가 포괄적 동맹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세중 총영사가 워싱턴으로 발령받은 것은 지난 2020년 3월. 그러나 부임하자마자 미증유의 '코로나 사태'가 미국을 휩쓸기 시작했다. 이후 약 2년간 워싱턴 한인 동포사회는 말 그대로 '마비 상태'였고, 총영사로서의 각종 업무도 제약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점이 "가장 아쉽다"고 말한 권 총영사는 한인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변했다.  
 
우선 권 총영사는 주요 한인 단체들을 이끌고 좌우하는 워싱턴 지역 한인 1세대 인사들이 "차세대에게 보다 많은 역할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한인 단체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겪게되는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하고 보듬어줘야 차세대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고,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음 그 자체를 존중해 주고, 차세대들에게 동포 사회 리더로서 참여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수년간 분규 상태였던 미주총연 사태를 봉합하는데 역할을 했던 권 총영사는 "미흡하지만 전진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보다 대승적인 차원의 노력으로 여러 갈등들이 완전히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권 총영사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는 미국 내 한인사회의 규모와는 정반대로 각종 한인회와 한인단체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한인 단체장들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단체장들이) 스스로의 성찰을 통해 권위의식을 버리고, 봉사정신을 기본으로  '섬기는 자세'를 키운다면, 한인들에게 존경 받는 리더로서 위상을 자연스레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한인사회의 원로로 활동하는  1세대가 "앞으로 100년 이민사회를 유지, 발전시킬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세중 총영사는 강원도 홍천 출신으로 춘천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미 노스웨스턴대대학원 법학석사, 경남대대학원 정치학 박사를 거쳐 외무고시(28회)에 합격해 외교부에 들어간 뒤 시카고총영사관 영사,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외교부 정책분석담당관,국무총리실 외교의전행정관,외교부 기후변화환경외교국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3년간 주미대사관 총영사로 재임했다.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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