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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편지] 시간의 형태

며칠 전에 프린스턴대학을 22년 만에 다녀왔다. 나의 천체물리 박사학위를 지도했던 교수님의 환갑 기념으로 열린 학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천문학계를 떠나 고고학을 공부하게 된 후로 오랜만에 다시 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 건물에 발을 들인 순간 5년 동안 박사과정을 밟으며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던 그때 기억이 물 밀듯 쳐들어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먹는 순간 주인공의 어릴 적 기억이 환기되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하드 드라이브에 이미 저장된 데이터를 꺼내 보고 그대로 되돌려 놓는 것 같은 수동적인 현상이 아니다. 기억의 행위 자체가 능동적인 ‘다시-체험’이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 낸다.
 
현상학적 또는 체험적 관점에서 볼 때 시간 자체가 다양한 형태를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직접 체험을 하는 주체에게 현재라는 시간은 과거가 벌써 담겨 있고 미래 또한 얽혀 있는 복잡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이는 역사철학자들이 즐겨 언급하는 발터 벤야민의 ‘지금 시간(Jetztzeit)’이라는 개념과도 상통한다. 중요한 과거의 경험이 이미 포함되고 미래의 방향이 함축된, ‘혁명적 포텐셜’을 지닌 시간이다.
 
천문학자의 가장 큰 숙제는 바로 시간 자체의 형태를 연구하는 것이다. 모든 천체의 관측은 빛으로 하기 때문에 관측 당시에 도착한 광자는 항상 과거의 현상을 우리 현재의 문턱으로 배달한다. 그 관측 대상이 멀면 멀수록 더 먼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다. 고고학자 또한 마찬가지다. 발굴 작업이라는 것이 땅을 파고 시간의 레벨을 층층이 벗겨나가면서 과거의 정보를 확보한다. 천문학자는 이러한 정보를 통해 우주의 이야기를 발견하고, 고고학자는 인간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인간과 우주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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