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리틀 트럼프’가 말하는 ‘위대한 미국’
그들에게 미국은 마지막 희망이다. 어떻게든 미국에서 일자리만 잡으면 가족의 생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무작정 미국행’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 무렵이다. 당시 많은 한국인이 불법체류자 신분을 감내하며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 이민법상 불법입국자와 불법체류자는 차이가 있지만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지난 주말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10여 명의 불법입국자를 태운 비행기가 아무 사전 통보 없이 새크라멘토에 착륙했기 때문이다. 이어 월요일에도 불법입국자 20여 명을 태운 비행기가 또 왔다. 주말에 온 비행기의 출발지는 뉴멕시코주, 월요일 도착 비행기는 플로리다주였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법무부 조사 결과 두 비행기 모두 동일 업체가 운영한 것이었으며, 이 업체는 플로리다 주 정부와 계약을 맺고 수송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논란이 됐던 ‘불법입국자 떠넘기기’ 사태가 캘리포니아에서도 벌어진 것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불법입국자 문제를 정치적 홍보 도구로 악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이송 과정에서 인권법 위반 여부는 없는지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 이번 사태에 대한 디샌티스 주지사의 언급은 없지만 그가 결정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디샌티스 주지사는 내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공화당 내 정치 거물이다. 당내 지지율에서도 도널드 트럼프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다. 아직 트럼프와 확실한 양강 구도는 형성하지 못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 등 변수가 많아 예측은 이른 상황이다.
정치 전문가들은 그를 ‘리틀 트럼프’라 부른다. 정치적으로 트럼프와 닮은 점이 많다는 얘기다. 별명답게 행보도 비슷하다. 트럼프가 트윗 정치를 했듯, 디샌티스도 지난달 대선 출마 선언을 전통적 방식 대신 트위터로 했다.
불법입국자 문제의 정치 이슈화 전략도 비슷하다. 사실 이를 먼저 쟁점화한 것은 트럼프였다. 그는 지난 2015년 대통령 선거 출마 회견을 하면서 “(멕시코는) 문제가 많은 사람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 이들은 성폭행범이고 마약, 범죄를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멕시코와의 국경에 거대한 장벽을 세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디샌티스는 지난달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위대한 미국으로 복귀(Our Great American Comeback)'를 내세웠다. 이 또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의 2016년 대선 슬로건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디샌티스가 말하는 ‘위대한 미국’의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불법입국자는 인권도 무시하고 화물 운반하듯 이동시켜도 된다는 것인가. 휴머니즘이 결여된 정치인은 독재자가 되기 쉽다. ‘위대한 미국’을 말하는 정치인이라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삶도 공감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설령 상대가 불법입국자일지라도.
LA타임스에 소개된 베네수엘라 출신 한 아버지의 사연이 짠하다. 그는 이번에 이송된 불법입국자 중 한명이다. 몸이 아픈 아내와 9살 딸을 베네수엘라에 남겨 둔채 미국에 입국하려다 체포된 그는 딸과의 영상 통화 후 눈물을 쏟고 말았다. “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는 딸의 말에 그는 또 한 번 무너졌다.
김동필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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