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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오웰의 〈1984〉에서 ‘오세아니아’ 진실부(眞實部) 기록 관리원 윈스턴이 고문을 당하면서 되뇌인 영국사회당의 구호다. 미친 윈스턴을 치유하기 위해’ 그를 고문하는 진실부의 오브라이언이 그에게 속삭인다. “현실은 외부에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게 아니라 오직 마음속에만 있는 거란다. 당이 진실이라 주장하면 그게 바로 진실이다.”
 
1948년 완성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속의 디스토피아는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에서 거의 그대로 실현됐다. 그 당시 중국의 ‘현재’를 지배하던 마오쩌둥과 사인방은 실제로 정치적 목적에 따라 ‘과거’의 기록을 뒤틀고 인민의 기억을 바꿔서 중국의 ‘미래’를 완벽하게 지배하려 했다. 마오쩌둥의 사주를 받은 관방 역사가들은 혁명의 미명 아래 거리낌 없이 과거사를 조작했다. 정확한 기록에 근거한 엄밀한 실증의 역사학은 ‘자산계급 학술권위’로 매도되고 배척됐다. 공산당의 권위를 훼손하는 기록은 조직적으로 훼멸됐다.


 
정치의 시녀가 된 그 시절의 역사학을 중국에서는 ‘영사(影射) 사학’이라 부른다. 직역하면 ‘그림자를 투사(投射)한다’ 정도의 의미지만, 여기서 ‘영사’란 ‘어떤 사물에 빗대 다른 얘기를 넌지시 암시하다’ 혹은 ‘에둘러 얘기하다’의 뜻이다. 결국  영사 사학이란 현재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과거사를 조작 왜곡하는 거짓의 역사학을 말한다. 문혁 시절  영사 사학은 지식분자를 탄압하고 인민대중을 선동하는 이념투쟁의 폭약이 됐다. 과연 어떤 논리로 문혁 시기 관방 역사가들은 그토록 자의적으로 과거를 조작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논리를 파헤쳐 보면 무덤 속의 마르크스가 벌떡 일어난다. 런던 북부 하이게이트에 세워진 마르크스의 묘비명은 젊은 시절 그가 남긴 잡기장에서 따왔다. “지금껏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 왔다. 요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이 한 마디는 이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청년들을 사회주의자로 만드는 주술적 마력을 발휘했다.
 
일면 그럴싸하지만, 20대 철학도의 오만한 발상, 치기어린 궤변일 뿐이다. 세상을 제대로 바꾸기 위해선 복잡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깊이 궁구해도 턱없이 모자란다. 현실을 모르는데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나. 20세기 공산주의 운동의 대실패는 복잡한 현실의 질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마르크스 추종자들이 섣부른 혁명의 정책을 남발한 결과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바꾸는 일이다.”이 논리에 따르면, 역사학은 혁명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사회 변혁을 위해서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에 따르면, 모든 주장은 당파성을 갖는다. 가치중립의 객관적 진리란 없다. 실증사학의 진리는 부르주아 계급 편향일 뿐이다. 부르주아 계급사관에 맞서 무산계급의 역사학을 세워야만 한다. 진리는 오직 혁명 과업을 이끄는 당이 결정한다. 과거사는 현실의 목적에 복무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오웰이 그린 오세아니아 진리부의 논리 그대로다. 그러한 관점에 서면, 역사 왜곡이야 말로 숭고한 혁명운동이 된다. 역사상 수많은 권력자들은 거짓말로 군중을 격분시키고, 성난 군중을 이용해 정권을 탈취해왔다. 권력을 장악한 후, 그들은 기록을 조작하고 기억을 왜곡한다. 오웰의 통찰대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지금 역사 교과서 논쟁이 뜨겁다. 현재 일부 교과서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북한에 대해서는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인 서술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뚱맞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릴 정도로 북한의 참담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서술로 북한 체제를 미화하기도 한다. 현행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대다수가 북한 김정은을 미화하거나 북핵 개발 및 인권 문제 등을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 검정 심사를 완료하고 2020년부터 일선 학교에서 채택해 사용 중인 교과서들이다. 김정은이 대놓고 핵개발을 하면서 우리나라를 위협하는데도 남북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하고, 경제특구를 활성화해 북한 경제가 개선되었다는 등 거꾸로 된 가짜 역사가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역사교과서가  좌파 교육의 교재가 된지 는 이미 오래다. 〈한국사〉 대부분은 다소 편차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한민국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오는 것에 목표를 맞추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모든 것을 왜곡 부정하고 전체주의 북한에서 있었던 사실은 미화시키고 있다. 정작 좌파의 대부인 마르크스는 민족주의를 경계했지만, 한국의 좌파들은 민족주의를 떠받들며 현대사를 나쁜 과거사로 치부하고 청산하자고 외친다. 지금도 교단에서 좌편향 교사들은 ‘대한민국은 친일세력에서 친미세력으로 변신한 사대주의자들이 만든 나라이며 그들에 의해 민족분단과 미국의 신 식민지배가 고착화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 교육의 현주소다.  
 
지난 3월 21일 이코노미스트지는 북한이 다시 굶주림의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유엔은 2019~2021년 당시 41%의 북한 주민이 영양실조 상태임을 확인했다. 최근 통일부가 발표한 북한 인권보고서는 참담한 북한의 실상을 보여준다. 현실이 그러함에도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진은 대체 무슨 근거로 김정은 정권에서 북한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고 민생이 개선됐다고 기술했는가. 왜 그들의 눈에만 북한의 참혹한 현실이 보이지 않는가. 역사학자들이 역사학의 기본 윤리를 저버린 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역사의 현실을 구성하는 까닭이다.  
 
2008년 2월 21일 뉴욕타임스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전남 영암군 구림에서 좌·우익 교차 학살로 3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 사건에 관해 보도하면서 그 마을 최초의 학살을 이렇게 묘사했다.“1950년 10월 7일 미국이 이끄는 유엔군이 북진할 때, 공산 게릴라와 좌익 촌민들은 구림에서 경찰과 친하다고 여겨진 기독교인 6명을 포함한 28명을 여관에 가두고 불 질러 죽였다.”이듬해 〈한국전쟁〉〉이란 책에서 미국의 한 저명한 역사가는 바로 그 대목을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이 경찰과 우익분자들 몇 명을 죽였다’고 축약했다. 역사가가 ‘경찰과 친하다고 여겨진 기독교인 6명을 포함한 28명’을 ‘경찰과 우익분자들 몇 명’으로 뒤바꾸고, ‘공산 게릴라와 좌파 촌민들’을 ‘몇 명의 마을 사람들’로 고쳐 썼다면, 원문을 악의적으로 곡해했단 혐의를 벗을 수 없다. 현장 답사도, 문서 검증도 없이 달랑 신문 기사 하나를 옮겨 쓰면서 이처럼 황당한 오독과 왜곡을 범한 이 역사가는 누구인가. 바로 1980년대 한국전쟁에 관한 수정주의 이론을 제창해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시카고 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다. 1980년대 한국의 지식계에서 그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우상처럼 군림했다. ‘반미·구국 투쟁’을 외치던 운동권은 전쟁의 책임을 온전히 미국과 이승만 정권에 전가한 그를 존경하고 추종했다. 덕분에 1990년대 구소련의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수정주의가 무너진 후에도 그는 2007년 제1회 김대중 학술상을 받는 영예를 누릴 수 있었다.
 
한국 좌파의 우상 커밍스는 미국의 한 역사가가 혹평했듯 고작 ‘미국의 결점에 관한 설교를 원하는 독자들만의 필독서’를 썼을 뿐이다. 그는 유엔 16국이 참전한 한국전쟁이 아무것도 해결 못한 무의미한 전쟁이었다고 선언한다. 미국의 군사 개입 덕택에 공산화를 피한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음을 그는 절대로 인정할 수가 없다. 바로 그 점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을 옹호해온 한국의 좌파 세력은 커밍스의 충실한 제자들이다.
 
조작되고 애곡된 한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장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이 민족사적 정통성을 담은 표준 국사 교과서 한 권 없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 내용이 좌우로 요동치는 현실은 부끄럽고 안타깝기 짝이 없다. 역사 교과서는 좌편향이나 극우적 견해를 배제하고,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정론에 입각해 바로 세워야 한다.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키워주어야 한다. 이것이 역사전쟁에서 우파가 반드시 승리해야 할 이유다. . 

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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