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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히로시마의 기억

1946년 이른 봄이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국을 앞둔 아버지는 친지 몇분과 원폭 현장인 히로시마에 갔다. 그때 아버지는 겨우 8살이던 나를 데리고 가 전쟁의 참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내 눈에 비친 히로시마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대도시가 완전히 폐허로 변해있었다. 무너지고 타버린 수많은 건물, 인적은 끊겨 살벌함 마저 느껴졌다.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폐허의 땅, 그 안에는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다. 그 가운데 일본으로 끌려와 억울하게 희생된 한국인도 2만여 명이나 됐다. 전체 희생자의 13%나 차지하는 숫자다. 희생자 가운데는 일본 정부의 회유에도 끝까지 저항하던 의친왕의 차남 이우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패전 후 희생된 자국민들을 위한 추모비를 세웠지만 한국인 희생자들은 제외됐다. 일본에 거주하던 한인들은 한국인 추모비를 세우려고 동분서주 했지만 추모공원 안에는 자리를 주지 않아 외곽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무려 29년의 세월이 흐른 1999년에야 현 위치로 옮겨졌다.  
 
당시 시민들은 원폭의 피해와 그 규모, 후유증 등에 대해 이해도 하지 못했고,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저 위력이 상당히 큰 폭탄 한 발이 거대한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려보낸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땅도 공기도 녹인 원자폭탄이 터진 곳으로부터 반경 얼마까지는 5년 안에 풀 한 포기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다음 해 봄에 쑥이 자라났다고 했다. 쑥의 생명력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이런 히로시마에서 얼마 전 선진국들의 모임인 G7 정상회의가 열렸고,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회의에 참석해 의미가 컸다. 이제 전쟁은 없어야 한다. 전쟁의 승자인들 피해가 없겠는가. 전쟁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피해가 따르는 일이다.  

노영자 / 풋힐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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