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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다름을 인정하기

산책을 나섰다. 차도 건너에 있는 나지막한 구릉을 한 바퀴 돌아올 작정이다. 집에서 차도 어귀까지 이어지는 작은 오솔길에 들어섰다. 길 양옆으로는 잔디밭이 있고 어른 셋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 꽉 차는 폭이 좁은 보도다.  
 
그 길에서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세 사람과 맞닥뜨렸다. 화려한 차림의 여인이 가운데서 걷고 양쪽에 두 명의 장정이 호위하듯 좁은 길을 막고 천천히 걸어왔다. 두 발짝 정도로 거리가 좁혀졌는데도 양쪽의 어느 장정도 뒤로건 앞으로건 비켜서는 기색이 없다. 일렬횡대를 유지하며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잔디 쪽으로 내려서지 않고 왼쪽 남자의 어깨와 부딪치며 그대로 직진했다. 잔디밭으로 물러날 줄 알았던 나이 든 아시안과 심하게 어깨를 부딪쳤는데도 그들은 소리 없이 지나쳐 갔다. 자신들의 잘못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EPL 토트넘과 크리스털 팰리스의 경기가 런던에서 열렸다. 경기가 거의 끝날 무렵 손흥민 선수가 교체되어 토트넘 벤치 쪽을 향해 걸어 나오는데 팰리스 응원석에서 한 사람이 손 선수를 향해 눈 찢기를 했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 팰리스가 0:1로 지고 있었지만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승패를 떠나 선을 넘은 행태였다.
 
인종차별을 당하면 즉시 맞서거나 그런 잘못된 구조를 지원하는 시스템과 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끼치는 영향에 대처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그 대책을 강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 관리와 자기애(自己愛)는 인종차별을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손 선수는 무심한 듯 지나치며 문제의 팬이 앉은 자리를 눈여겨보는 듯했고 곧 그 좌석 번호를 구단 측에 알려 합당한 조처를 하도록 했다고 한다.  
 


불현듯 인종차별 논란의 당사자가 됐던 젊은 날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공부를 마치고 중부의 한 대학에 근무했던 때의 일이다. 이공계 중심의 학교 성격상 구성원은 외국계가 많았고 교직원 보드에서는 자주 모임을 열어 각자 고유 의상을 입고 나오라고 권했다.  
 
그날은 자녀를 동반한 여성들만의 친교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한복을 차려입고 세 살 된 아들은 털이 보송보송한 노란색 반코트를 새로 사 입혀 데리고 갔다. 아이의 코트를 벗겨 벽에 거는데 저만치에 똑같은 옷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모임이 끝나고 아이에게 코트를 입히고 있는데 인도 고유 의상인 사리를 입은 한 부인이 다가왔다. 노란 코트를 흔들며 가까이 와서 아이들의 옷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그 부인이 내민 옷에선 독특한 냄새가 풍겼고 소매 끝엔 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다. 무심코, 참으로 생각 없이 나는 그 코트에서 카레 냄새가 나니 너희 아이 옷이 맞다고 했다.  
 
퇴근한 남편과 늦은 저녁을 먹으며 낮의 일을 얘기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교직원 보드 멤버를 앞세운 그 여인이었다. 낮에는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사람이 웬일로 실신할 듯 통곡하며 인종차별을 당해 너무 억울하다며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가져간 자기 아이의 옷을 돌려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연실색했다. 나는 졸지에 남의 물건을 빼앗은 데다가 심한 인종차별주의자까지 되고 말았다. 인종차별을 당하면 저렇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로구나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침에 옷에서 떼어 낸 가격표를 증거로 아이 옷을 사수하기는 했지만….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인종차별은 수시로 겪는 일이어서 그때의 일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때로는 참으며 때로는 부딪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에도 이제는 내성이 생겼다.  
 
인종차별은 아득한 태고로부터 이어져 온 인간에게 내려진 천형이 아닐까 여겨진다. 인류는 아직도 나와 너의 다름을 참아내지 못하고 있다. 차별과 구별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멀고도 멀다. 하늘에 닿으려고 바벨탑을 높이 쌓아 올린 인간에 대한 벌로 인종과 언어를 훑어 버린 신에 대한 끝날 줄 모르는 인류의 저항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박 유니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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