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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모든 움직임이 목소리다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는다. ‘목소리’는 스며들어 있다.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은 잃어버린 목소리를 순례하기 위한 여행이다. 목소리 순례를 향해 내딛는 한 걸음, 그 걸음을 지탱해주는 현상들에 관해 이 책에 썼다. 사이토 하루미치가 ‘목소리 순례’의 서두에 쓴 글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사진을 찍으면서 소중히 여기는 목소리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새로운 목소리를 찾아 나선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또 아무 상관이 없는 타인이라도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면 신기한 온기의 교류가 이루어진다.  
 
두 살이 될 무렵 그는 선천적인 감음성 난청이라는 진단을 받고 보청기를 끼고 발음훈련에 들어갔다. 낮에는 듣기와 말하기 교실에서, 밤에는 집에서 발음훈련을 받았다. 유년기 동안에 결코 본인은 듣지도 못할 목소리를 타인의 귀에 맡기며 극단적인 공포심에 떨며 조바심만 커져 대화의 내용은 기억도 못 했다. 그는 타성적으로 일반사회에서 참으며 죄인처럼 지내다가 고독이 악화하여 죽음에 이르는 잘못을 저지르기보다는 굴욕스러워도 농아학교에 가기로 결심한다. 농아학교에서 그는 수어를 배운다. 수어는 몸짓, 손짓 정도밖에 전달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던 그에게 눈으로 듣는 목소리, 돌고 도는 목소리를 느낄수록 얼어붙었던 목소리에 피가 돌고 온기가 깃들기 시작한다는 것을 체험한다.  
 
모든 움직임이 목소리다. 움직이는 손과 팔, 섬세하게 변하며 수어의 의미를 지탱하는 표정, 오가는 움직임 하나하나에 이야기하는 사람의 마음의 색이 깃들어있음을 배운다. 그렇게 주고받은 대화는 가슴 속에 고여서 피와 살이 되고 마음 구석구석에 영양분으로 스며든다. 지금껏 경험한 적 없는 ‘목소리’의 맛에 전율하며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말을 던지면 상대방도 새로운 말로 화답한다. 말은 순환할수록 친밀함과 관계가 깊어간다. 이것이 ‘진정 살아있는 대화’ 라고 믿었다. 수어는 온몸을 써서 자아내는 강력하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움직임이다. 손을 격렬하게 움직이면서 춤추는 사람, 손으로 말하는 사람을 사진에 담고 싶어 한다. 더 나아가 얼굴과 몸의 표현까지도 또 그들을 둘러싼 공기까지도 볼 수 있는 것이 수어다. 눈빛을 통해서 침묵 사이에 전해지는 목소리를 들을 수도 전할 수도 있다.  
 
그는 장애인 프로레슬링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자신이 청각장애인인 만큼 모든 장애인의 고충과 그들의 대화법, 그들의 목소리 순례를 한 걸음씩 체험하고자 여행을 떠난다. 한번은 가슴 아래부터 팔의 새끼손가락 쪽이 완전히 마비된 경추손상 환자와 경기하게 되었다. 경추손상 환자와 장애를 맞추기 위해 그 또한 양손을 뒤로 묶이고 허벅다리와 발목까지 벨트로 묶인 상태로 링 위에 올라갔다. 팔다리를 쓸 수 없으니 당연히 머리 박치기와 몸치기 밖에 다른 공격 방법이 없었다. 머리뼈가 부딪치고 또 부딪치고, 뼈와 뼈가 부딪쳐 묵직한 통증과 동시에 날카로운 섬광이 날고 있었다. 상대방의 이글거리는 강렬한 눈빛에 꽂혀 그는 정신을 잃었다. 링 위에 쓰러진 채 의사의 처치를 받는 중에 뿌연 시야를 뚫고 상대가 팔을 들고 승리 세리머니를 하는 것이 보였다. 슬로모션으로 상대방의 몸에서는 눈부신 광채가 뿜어나왔으며 환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겨우 기어서 손발의 벨트를 푼 다음, 그 상대를 촬영하려 했지만 맞아 부은 눈과 콘택트렌즈를 잃어버린 상태여서 대충 감으로 초점을 가늠하여 결국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은 지금도 그 경기장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경기중에는 단 한마디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수십 시간 대화를 나눈 사람보다 깊은 목소리가 각인된 추억이다. 이렇게 몸을 통해서 전하는 목소리가 있다. 몸만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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