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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후 불체자로 추방 "입양기관 홀트가 1억 배상"

4년 전 본지보도 애덤 크랩서
3세때 입양ㆍ학대에 파양까지
시민권 없어 7년 전 한국 추방
법원 "방치한 입양기관 책임"

44년 전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2016년 불체자 신분으로 다시 한국으로 추방된 입양인 애덤 크랩서(46·한국명 신송혁·사진)가 한국 입양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본지 2019년 1월 24일 A-3면〉
 
법원이 입양을 진행한 홀트아동복지회가 후견인으로서 해외로 입양 아동을 추적해 보호하고 해당 국가의 국적을 취득했는지 확인해야 하는 의무를 방기한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 법원이 한국 내 입양기관에 대한 입양 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박준민 부장판사)는 16일 크랩서가 홀트아동복지회(홀트)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크랩서는 3세 때인 1979년 미국에 입양됐지만 가정 학대를 받다가 1986년 파양됐고, 1989년 현지에서 다시 입양됐다가 16세 때 또다시 파양 당했다. 두 번째 양부모는 학대 혐의로 유죄가 선고되기도 했다.
 
그는 두 번이나 양부모에게 버림받으면서 미국 시민권을 제대로 신청하지 못했고 2015년 영주권을 재발급받는 과정에서 청소년 시절 범죄 전과가 드러나 2016년 한국으로 추방됐다.
 
크랩서는 한국 변호인을 통해 2019년 홀트와 한국 정부에 2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홀트가)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등 후견인으로서 보호 의무와 국적취득 확인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의무를 다했다면 원고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해 강제 추방되는 결과가 초래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배우자와 자녀들과 미국에서 함께 거주할 수 없게 돼 수십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상실한 원고가 겪을 정신적 고통은 매우 클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크랩서는 입양 수속 당시 생모가 있음에도 부모 정보를 기재하지 않고 고아 호적을 만들어 보낸 책임도 홀트에게 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홀트 측은 소멸시효 10년이 지났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신씨가 미국에서 강제 추방된 2016년 11월부터 시효가 시작된다고 판단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한국 정부의 관리 소홀 등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에 대한 배상 요구에는 "아동의 입양에 관한 요건과 절차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권익과 복지를 증진해야 하는 일반적인 의무를 부담한다"면서도 "이는 특정 당사자가 직접 권리침해 또는 의무 위반을 주장할 사안으로 볼 수 없다"고 기각했다. 아울러 "정부가 고의 또는 과실로 홀트의 관리.감독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해외로 보내진 입양인이 입양기관과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1953년 한국의 해외 입양이 시작된 이후 크랩서가 처음이다.  
 
재판에 출석하지 않은 크랩서는 미국에 있는 자녀들과 가까이 있기 위해 멕시코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씨의 소송대리인 김수정 변호사는 선고 후 "불법 해외 입양을 주도해 관리하고 계획.용인한 국가 책임이 인정되지 않아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AP통신 등 미국 내 주요 언론들도 신씨의 재판 결과에 대해서 보도하고 "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입양기관들이 무차별적으로 아이들을 모아 해외 입양을 보내며 돈벌이에 나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비슷한 고통을 받고 있는 미국 내 입양아들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이번 법원의 판단은 부당한 방법과 과정을 통해 무차별 해외 입양이 이뤄져 심각한 인권 피해가 있었다는 해외 입양아들과 민간 단체들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어서 추후 '소송 러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유럽과 미국의 입양인들은 올해 초 한국의 정부 조직인 '진실화해위원회'에 정식 조사를 요청해 30여 건이 조사중에 있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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