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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엄마 생각, 육전을 부치며

이기희

이기희

육전을 만든다. 어머니날 엄마 생각을 한다. 얇게 썬 소고기는 타월로 눌러 핏물을 제거하고 밀가루로 살짝 옷을 입힌다. 계란은 알끈을 자르고 잘 저어 풀고 소금으로 간을 한 뒤 달걀물 입혀 부친다. 담백하고 입안에 고소한 맛이 빙그르르 도는 말랑말랑한 소고기 육전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북 달성군 현풍면 동점리. 할매 곰탕으로 유명한 현풍 읍네를 뒤로 하고 드문드문 가로수가 서 있는 길을 지나면 버섯처럼 옹기종기 붙은 삼거리의 작은 동네가 보인다. 삼만이 아재가 짚을 엮어 수양버들에 묶은 그네에 앉아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 쓰고 오는 삼천리 버스를 기다렸다. 마중 할 사람 없어도 버스가 도착하면 가슴이 콩닥거린다. 아무도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다. 기다림의 시간은 슬프지 않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날들은 아름다웠다.
 
생일 날이면 잠결에 안개꽃처럼 번지는 미역국 끓는 향기를 맡는다. 솥뚜껑을 뒤집어 장작불에 올리고 어머니가 쫄깃하고 고소한 육전을 구울 때쯤이면 마크 샤갈의 그림 속 연인을 만나 공중을 떠다녔다. 사랑은 중력의 법칙을 벗어난다. 어디서던지 어떤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늘 높이 떠오른다. 진실한 사랑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어머니는 땅에 묶인 영혼의 사슬을 풀어 주셨다.
 
육소간이 없는 마을에서 고기나 생선 맛 보는 날은 장날이나 아주 특별한 날이다. 어릴 적엔 키도 작고 비비 말라 아침 조회 때 앞 줄에 섰다. 지금은 육해공군 안 가리고 후딱 해치워 ‘장수’에 가깝지만 어릴 적엔 입이 짧고 식사 때마다 까탈을 부려 엄마 속을 끓였다. 없는 시골 살림에 좋아하는 육전을 부쳐주기 힘들었다. 제삿날이나 명절이면 차례상에 올릴 소고기 뭇국 끓이고 편을 떠서 육전을 부친다. 차례상에 올리기 전에 음식에 입을 대면 안 되고 계집아이가 먼저 육전에 손을 댈 수가 없다. “아이고, 이 걸 떨어트렸네.” 접시에서 일부러 떨어트린 육전을 얼른 집어 입에 넣어주신다. 육전은 어머니 사랑만큼 달달했다.
 
초등학교 때 장질부사를 7개월 동안 앓고 사경을 헤맸다. 다들 죽은 목숨이라고 혀를 찼다. 어머니는 밤마다 입술을 내 입에 대고 주무셨다. 병균이 당신 몸으로 옮겨가 딸을 살릴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셨다. 기적같이 살아났는데 고온에 시달려 병균이 박멸했는지 그 담부터 무럭무럭 자라 건강해졌다. 암탉이 먼저 낳은 따스한 계란을 동그랗게 지져 도시락 밥 위에 얹어 주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병 수발 하느라 돌보지 못해 내가 허약하다고 자책하셨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뇌일혈로 쓰러진 아버지는 두 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둑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휩쓸려 떠내려간다. 어머니는 내 인생의 든든한 댐이다. 가뭄이 오면 수로를 열어주고 넘치면 수위를 조절하라 이르신다.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흘려 보내는 것도 삶의 방편이라 말씀하신다. 천지를 뒤엎을 비와 천둥은 잠시 피할 수 있지만 다시 올 지 모르니 신중하라 가르친다.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는 하늘은 손바닥 크기 일 뿐이다. 하늘 향해 머리 꼿꼿이 들고 광활한 땅에 발 붙이고 살며 힘들고 낯설어도 오늘을 견디라 이르신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강물은 거슬러 흐르지 않는다. 억겁을 지나도 어머니 사랑은 시공을 초월해 흐른다. 어머니! 당신 몸보다 더 소중하게 지키려 했던 피의 흔적을 기리며 사랑의 꽃 한송이 돌바위에 새깁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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