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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원화와 화랑

한국인을 대표하는 정신으로 선비정신과 화랑정신을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랑정신은 신라 시대에 이미 끝난 정신이겠으나 여전히 빛나는 화랑정신을 이어 받들자고 이야기할 정도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선비정신이 문(文)의 상징이라면 화랑정신은 무(武)의 상징이라고나 할까요? 육군사관학교를 화랑대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겁니다.  
 
화랑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무심히 지나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임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습니다. 바로 원화(源花)의 이야기입니다. 화랑보다 먼저 만들어진 조직이었으나 여성 우두머리 간의 질투로 인해서 조직이 망가지고 사라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결과 화랑으로 조직이 바뀝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는 것은 바로 원화의 지도자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고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리더가 되는 조직이 여성 중심으로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남자의 조직에 앞서서 말입니다. 어느 나라가 나라를 이끌 조직으로 여성의 조직을 두었을까요? 우리나라가 남녀차별이 심했던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매우 최근의 일입니다. 신라 시대의 모습만 봐도 여성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저를 생각에 잠기게 한 것은 왜 쉽게 원화를 없애고 화랑을 만들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원화도 화랑과 마찬가지로 수행하고, 공부하는 엘리트 조직이었습니다. 각 원화를 따르는 수도 매우 많았습니다.
 
화랑은 국선(國仙)이라고도 했습니다. 나라의 신선이라는 뜻입니다. 산천을 유람하고, 수련과 공부를 하였고, 무술을 연마하였습니다. 또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화랑이었던 김유신을 보면, 신령한 일을 행하는 ‘무’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아마도 화랑은 제사장이자 정치인이고, 무인이자 문인인 수련조직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원화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다면 원화가 화랑으로 바뀌는 것은 여성으로 대표되는 제사장의 조직이 남성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서 원화를 서로 질투하는 모습으로 폄훼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실 한 원화가 문제가 있으면 벌을 주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화랑으로 아예 구성을 바꾸었다는 것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주체가 바뀜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서술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바뀌는 모습을 나타낼 때 자주 사용하는 기술 방법입니다.
 
여성의 질투를 상징처럼 사용하는 것은 고구려의 황조가(黃鳥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유리왕의 두 부인인 화희(禾姬)와 치희(雉姬)가 다툼으로 인해 치희가 떠나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지만 두 여인의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화희는 농경, 치희는 수렵, 유목을 상징합니다. 화(禾)는 쌀의 의미이고, 치(雉)는 꿩의 의미입니다. 농경민족에 밀려 유목민족이 떠나가는 모습을 질투에 빗대어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여성을 질투의 상징으로 빌려 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에 나라를 이끌 조직으로 여성을 먼저 두었을까요? 신라에서 여성의 지위는 우리 상상의 범위를 넘습니다. 원화의 뒤를 이은 화랑의 이름도 일종의 실마리가 됩니다. 원화는 꽃의 근원이라는 뜻이고, 화랑은 꽃 같은 남자라는 뜻입니다. 꽃의 의미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원화의 뒤를 이은 화랑도 화장으로 하고 예쁘게 꾸몄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제사장의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저는 화랑의 활약상을 보면서, 산천을 뛰어다니며 수련하고, 하늘에 제를 올리고, 공부하고, 나라를 이끌던 원화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화랑정신 못지않게 원화정신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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