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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초짜 농부의 일기

이기희

이기희

인터넷 검색 엔진이 엄마다. 엄마보다 낫다. 모르는 게 없다. 예전엔 모든 걸 엄마에게 물었다. 애들이 아프면 의사에게 데려가기 전에 엄마한테 전화해 비상조치를 취한다. 김치 담는 법, 밑반찬, 생일이나 잔치 음식, 손님 초대할 때면 전화통이 불 나게 도움 받는다. 그 시절은 흘러간 옛추억. 이젠 컴퓨터만 켜면 뚝딱 세상만사 해결책과 해답이 나온다. 척척박사로 존재감을 자랑하던 어머니의 지위가 뒷켠으로 밀려나고 대신 구글과 네이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초짜 농부 변신의 위대한(?) 스승은 인터넷 검색창이다. 만사는 마음 붙이기에 달렸다. 일은 할수록 재미있고 게으름은 부릴수록 늘어난다.  
 
지난 해 새 집으로 이사 와 작은 텃밭 일궈 상추 호박 들깨 씨 뿌리고 토마토와 고추, 부추 모종을 얻어 심었는데 이게 왠 일! 여름 내 싱싱한 푸성귀 솎아먹고 깻잎 장아찌 담궈 나눠먹었다. 몇 포기 심은 토마토는 주렁주렁 달려있어 보기만 해도 침이 돌고 풍년 농사 자랑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다.  
 
오래 살면 판이 뒤집힐 때도 생긴다. 올해는 마음 단단히 먹고 본격적으로 ‘농사짓기’로 엄숙하게 다짐한다. 그동안 애 키우랴 살림하랴 사업하랴 사시장철 허덕이며 살았는데 드디어 숨 돌리고 사는 날이 온 거다.  
 
애 둘은 제 짝 만나 결혼, 각기 손주 둘씩 낳아 자기 새끼 건사하느라 정신 없어 나 홀로 해방의 기쁨을 누린다. 화랑도 소매업 접고 도매 및 인터넷 판매로 전환하자 드디어 내 인생에 쨍 하고 해뜰 날이 도래했다.  
 
소매 화랑은 주인이 작품 구입 및 판매까지 직접 관여해야 하기 때문에 중노동에 가까운 시간에 매달린다. 고객들이 직원보다는 주인과 흥정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점심식사는 건너 뛰거나 흡입식으로 삼키는 날이 허다하다.  
 
도매업과 인터넷 판매는 얼굴 없는 장사라서 주인이 나서지 않고 회사 경영에만 관여해 시간은 내 편이다. 적게 일하고 적게 벌면 적게 쓰고 편하게 살면 된다.  
 
해동 하자마자 검색창 지시대로 파워 경작기로 땅 파고 말똥과 좋은 흙을 섞어 땅을 비옥하게 만들었다. 각종 씨앗을 구해 뿌리고 모종을 심었더니 깨알처럼 옹기종기 손톱 크기만큼 싹이 돋아난다. 눈 뜨면 텃밭으로 나가 오늘은 얼마나 자랐나 애들 키울 때처럼 키를 재 본다.  
 
청상에 홀로 되신 어머니는 땅의 소출로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손마디가 휘어지게 호미질을 하셨다.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심은 데로 거둔다’는 어머니 말씀대로 땅은 나를 키웠다.  
 
내친 김에 꽃단장한다고 과일나무도 종류별로 심었다. “과수원 할거냐? 어느 세월에 키워 따먹느냐?”고 놀리지만 누군가가 땅의 풍요로운 수혜자가 될 것이다.  
 
‘”마타리 꽃”/ 소녀는 마타리 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약간 상기된 얼굴에 살포시 보조개를 떠올리며./ 다시 소년은 꽃 한 문큼을 꺾어 왔다./ 싱싱한 꽃가지만 골라 소녀에게 건넨다./ 그러나 소녀는/ “하나도 버리지 마라.” 황순원의 ‘소나기’ 중 나는 이 대목을 제일 좋아한다.  
 
먼 동이 트는 창가에서 제일 먼저 머리 들고 자란 부추를 다듬는다.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 세상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다. 작고 여리고 순하고 부족한 것들도 살아있는 한 하늘 향해 키가 자란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텃밭에서 더 이상 아등바등 살지 않기로 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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