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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인스턴트 라면의 사회문화학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라면이라는 신기한 음식이 한국사회에 등장한 것은 1963년 가을이었다. 60년 전 일이니 환갑을 맞은 셈이다. ‘삼양라면, 즉석에서 뚝딱 끓여먹을 수 있는 꼬부랑 국수! 한 봉지에 단돈 10원’. 가난한 살림에 단비 같은 희소식이었다.
 
시대가 라면을 원한 현실도 있었다. 그 무렵 흉작이 이어지며 해마다 쌀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혼식 분식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그런 나라의 도움도 받은 덕에 라면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60년 사이에 인스턴트 라면은 한국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소울 푸드’가 되었고, 세계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이제는 원조인 일본의 라멘을 제치고 정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라면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 현대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라면의 인기는 통계 숫자가 말해준다.
 
세계라면협회(WINA)의 ‘2021년 세계 라면시장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연간 73개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베트남으로 1인당 연간 87개의 라면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줄곧 1위였는데, 베트남에게 1위를 내준 것이다. 3위는 네팔.
 


라면 전문 사이트 ‘라면 완전 정복’에 따르면, 현재 한국 내에서 시판 중인 라면 종류만 무려 555가지라고 한다. 굉장하다. 지난해 해외로 수출된 라면은 26만톤, 면발 길이만 약 1억㎞로 지구를 2670바퀴나 감을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즉석 면류 수출액은 지난해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한국 사람들은 배고파서, 심심해서, 즐거워서, 해장으로, 먹고살기 위해서, 오늘도 라면을 끓여 먹는다. 해외에 사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사연을 담은 라면은 오늘도 다양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매운맛 경쟁이 치열한 모양이다.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이래저래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김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서
 
나도 줄기차게 라면을 먹으며 살아왔다. 지금도 한국인 평균보다는 훨씬 많이 먹는 편이다.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에 인이 박인 모양이다. 혼자 살면서 끼니를 때우기엔 라면만한 것이 없어서 지겹게도 먹었다. 그동안 내가 먹어치운 라면은 얼마나 될까? 한국인 평균인 75개로 쳐서 60년이면, 무려 4500봉지를 먹었다는 계산이 된다. 어머어마하다.
 
라면에 대한 가장 큰 걱정은 영양가는 별로 없고, 건강에 해롭다는 점이다. 하지만, 뜻밖에도 라면 마니아 중에는 장수 사례가 많다. 가령, 일본 닛신식품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는 컵라면을 발명한 1971년부터 2007년 97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매일 라면을 먹었다. 또, 젊은 시절 장 질환을 앓은 뒤 30년 넘게 하루 세끼 ‘안성탕면’만 먹어 유명했던 고(故) 박병구 옹은 92세까지 살았다.
 
이쯤에서 내 개인적 생각을 말하고 싶다. 라면만 먹는 생활은 어찌어찌 견딜 것 같은데, 그렇지만 문화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끼 대충 때우는 식의 인스턴트 문화예술이 자꾸만 많아지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우리의 문화가 기계 문명의 눈부신 발달과 함께 하루가 다르게 작고 가볍고 재미있고 얄팍하고 달콤하고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위험하게 봐야한다. 에를 들어, 그런 흐름으로 가면 인공지능의 무서운 기세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작곡을 하고, 그림을 그려서 공모전 최고상을 받고, 소설을 써서 문학상 후보가 되고, 신문기사를 쓰고 하는 그런 세상이다. 이런 현실에서 문화예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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