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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수첩] '아시안' 이라는 이유만으로…

장열 사회부 부장

장열 사회부 부장

디트로이트를 떠나기 전날(21일)이다. 디에고 리베라가 그린 벽화 속 마사오 히라타의 모습이 계속 아른거렸다. 디트로이트 미술관을 다시 찾아갔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포드 공장에서는 폭격기가 생산됐다. 그곳에서 자동차를 만들던 히라타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그의 손에는 또 다른 기름때가 묻었다. 노동의 본질은 변한 게 없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의 처지다.
 
일본계미국인시민연맹(JACL)의 기록을 보면 “당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매일 히라타의 출퇴근을 감시했다”는 내용이 있다. 그때의 시대상은 그렇게 히라타를 달리 보게 했다.
 
1982년 우드워드 애비뉴에서 쓰러진 중국계 빈센트 친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제도사로 일하던 평범한 청년이었을 뿐이다. 피사체는 그대로였다. 단, 디트로이트의 분노가 그를 다르게 보도록 몰아갔다.
 
에밀 길레르모는 하버드대 졸업 후 NBC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아시아계 최초로 NPR에서 뉴스 쇼를 진행한 인물이다. 그는 친을 살해했던 로널드 에벤스를 11년 전에 인터뷰했다. 출장 전 길레르모 기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에게 에벤스를 만났던 이야기를 들었다.
 
에벤스 역시 평범한 백인이었다. 법원에 출두하던 그의 사진을 보면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멀끔한 중년 남성이었다. 당시 시대적 렌즈는 에벤스를 통해 악의 평범성을 보게 했다.
 
길레르모 기자는 “에벤스는 친을 죽인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한 잘못’이라고 인정했다”며 “그러나 그 사건은 인종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에벤스는 연방 민권법으로 기소됐다. 책임을 회피하려면 인종적 요소가 작용했다는 점을 끝까지 부정할 수밖에 없었을 터다.
 
그렇기 때문에 40여 년이 지나도 외침은 잦아들 수 없었다. 오늘날 아시안-아메리칸이 누리는 유산은 외침의 메아리다.
 
친 사건을 계기로 미국정의시민협회(ACJ)를 조직했던 로랜드 황 교수, 헬렌 지아 기자 등은 그때 모두 30대였다. 그들의 머리는 어느새 희끗희끗하다. 증오의 렌즈를 깨려는 아시안 민권 운동은 그렇게 견고해졌다.     
 
인간사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건이 일어난다. 원인은 다양하다. 피해자가 단순히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모든 걸 증오의 범주에서 다룰 순 없다.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악용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자취를 쫓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시대적 맥락은 때론 증오를 방증한다. 적어도 디트로이트의 상흔은 그 사실을 지금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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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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