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전 벽화도 예견…미국차 동력은 아시안
분노의 상흔, 디트로이트(2)
미술관 2층 한복판 걸린 대작
일본계 금형 제작자 생생 묘사
현재 모터시티 재건과정 닮아
미시간주 64개 한국회사 진출
GM 아시안 임원 75명…증가세
“아시안 없이 차 못만들 정도”
디트로이트와 아시안은 불가분의 관계다. 자동차 산업이 매개체다. 벽화도 역사를 증언한다.
18일 오전 11시, 디트로이트 미술관(DIA)으로 향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모터 시티가 그림으로 담겨있는 곳이다.
미술관 2층 한가운데인 ‘리베라 코트’에 들어섰다. 한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벽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1932년 디에고 리베라(1886-1957)가 그린 ‘디트로이트 산업 벽화(Detroit Industry Murals)’다.
1930년대 포드 자동차 공장의 모습이 선연하게 담겨있다. 세로 22피트, 가로 73피트의 대작이다. 당시 노동자들의 역동성을 세밀하게 담으려면 작은 캔버스로는 부족했을 터다.
안내를 맡은 큐레이터가 벽화 하단의 한 인물을 가리켰다.
DIA 플로레스 케어스 큐레이터는 “아시아계인 ‘마사오 히라타’라는 인물이다. 포드 공장의 금형 제작자였다”고 소개했다.
케어스 큐레이터는 “당시 디에고는 공장의 곳곳을 둘러보며 약 8개월에 걸쳐 노동자들의 삶을 그렸는데 모두 실존 인물들”이며 “히라타를 비롯한 벽화 속 흑인, 히스패닉 등은 당시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제조 업계가 인종적으로 이미 다양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벽화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마사오 히라타의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숙연해진다. 오늘날과 달리 아시안이 흔치 않았던 시대다. 그의 손에는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디트로이트는 그렇게 세워진 도시다.
부침의 역사는 현재로 이어진다. 디트로이트 다운타운의 컨벤션 센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계적 규모의 국제 자동차부품 전시회(WCX)가 열리는 중이다.
컨벤션 부스 제작사 비버(Beaver)의 앨런 천 대표는 “디트로이트의 부스 제작 프로젝트는 대부분 한인 자동차 업체의 전시 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특히 수년 사이 한인 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전시 수요 역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의 부품 수는 대략 3만여 개다. 그중 상당수 부품을 한인 등 아시아계 업체가 생산 중이다. 이번 WCX에서만 무려 30여 개의 한인 부품 제조사들이 나섰다.
대영전기 정인규 부사장은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터용 코어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며 “한국 업체들의 모터 코어 생산 기술은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실제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미시간주에는 상당수의 한인 자동차 업체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디트로이트 무역관에 따르면 현재 미시간주에는 LG, 포스코, SK이노베이션 등 64개의 한인 및 한국 회사가 진출했다.
재미한인자동차산업인협회(KPAI)도 있다. 44년째(1979년 설립)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과 궤를 같이 해왔다. GM, 포드, 도요타 등 유수의 자동차 기업에서 일하는 한인 150여 명이 활동 중이다.
KPAI의 서병옥 회장은 “이제 미국 자동차 업계는 아시아계 회사 없이는 차를 만들기 어려울 정도”라며 “포드나 GM에서 임원급으로 있는 한인도 많기 때문에 아시안을 제외하고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을 논할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다운타운에는 마천루가 있다. GM 본사인 르네상스 센터로 갔다. 우뚝 솟은 빌딩은 모터 시티의 상징이다. 가장 높은 곳에 박아둔 파란색 ‘GM’ 표시가 자부심을 뽐내고 있다. 빌딩명처럼 GM은 다시 르네상스를 꿈꾼다.
GM 아리아나 페레이라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현재 GM 내 아시아계 직원은 7510명으로 전체 인력 중 8.5%에 이른다”고 말했다.
GM에 따르면 아시안 직원 비율은 2019년(6.8%), 2020년(7.3%) 등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아시아계 직원 5명 중 4명(81%)꼴로 엔지니어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 근무 중이다. GM 내 아시아계 임원 역시 현재 75명으로 전년(55명)보다 늘었다. 아시아계가 GM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디트로이트는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변화의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일본계 회사 ‘히노 트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강도윤(53)씨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던 2008년에 이곳으로 왔다.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의 위기와 파산을 지켜봤다.
강씨는 “출석 중인 한인 교회만 봐도 한동안 교인 수가 줄다가 30~40대 젊은 엔지니어들이 유입되면서 다시 늘고 있다”며 “특히 배터리 분야에서는 한인과 인도계 등 아시안이 핵심 인력으로서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시안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던 모터 시티는 지금 재건 중이다. 역설적이게도 동력은 아시안이다. 디트로이트의 심장은 다시 고동치고 있다.
디트로이트=장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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