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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저씨! 담뱃불 좀 부칩시다”

한국에서 사십 대 초반 때 일이다.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간단한 회식이 있었다. 이럴 때는 으레 술도 마시게 된다. 나도 소주 서너 잔을 마셨다. 음주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내 철칙이었기에, 택시로 귀가하기로 마음 먹고 담배를 피우며 발길을 택시 정류장 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거의 정류장에 다다랐을 때 두 청소년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중 한 명이 “아저씨! 담뱃불 좀 부칩시다.” 어투가 조금은 건방졌다.  
 
순간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욱’하고 참지 못하는 기질이 발동했다. “뭐야? 너는 아버지도 없냐?” 나는 그 애의 멱살을 움켜쥐고 뺨을 한 대 때렸다. 불의에 일격을 당한 녀석은 조금은 겁먹은 듯 말투는 다소 공손해졌다. “왜 때려요? 파출소 가요!” “뭐? 파출소 그래 잘됐다. 따라와” 나는 그 애의 허리띠를 부여잡고 앞장섰다.  
 
파출소는 회사 근처에 있어 금방 도착했다. 그 애는 공중전화로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었다. 잠시 후 엄마라는 사람이 와서 다짜고짜 "나도 안 때려 본 자식을 네가 뭔데 손찌검이야? 경찰 아저씨! 저 사람 처벌해 주세요." 그녀는 내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진술 과정에서 그 애들이 Y공고 2학년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럴 때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이 잘못하면 죄인이 된 심정으로 "제가 자식 교육을 잘못 했습니다. 제 자식을 혼내서 사람 만들어 주세요" 라며 자식의 머리를 쥐어박지 않았던가?
 


그녀는 내가 조서를 받기 위해 경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는지 자식을 데리고 나갔다. 파출소장이 "선생님! 제 직권으로 훈방 조치해 드리고 싶지만, 피해자 부모가 ‘처벌을 원한다’고 진술했기에 사정은 딱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라며 미안해했다. 자정이 다 되어 나는 순찰차에 태워져 영등포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넥타이와 혁대를 풀어 놓고 난생처음 철창에 갇혔다. 유치장은 을씨년스러웠고 냉기 때문에 추위가 엄습해 왔다. 사복 착용의 담당 경찰관이 내 조서를 읽어보고는 혀를 차며 "세상 참 이상하게 변해가네"라며 한탄했다. 그는 "담배 피우고 싶으시죠? 여기는 금연구역이니, 감시카메라가 선생님 쪽을 비추면 고개를 저쪽으로 돌려 연기를 내 뿜으세요"라며 자신의 담뱃갑을 통째로 건네주었다.  
 
억울한 마음인지 추위 때문인지 바들바들 떨다가 새벽 5시쯤 문래동 ‘즉결재판소’로 이송되었다. 그곳에는 관내 파출소로부터 집결된 피의자들이 50여명 넘게 있었다.
 
오전 8시가 조금 지나자 법복을 입은 여자 판사가 입정했다. 고성방가, 무전취식, 미풍양속 저해, 폭력, 노점상 단속 등의 죄질에 따라 구류 29일 미만으로 판사가 처벌하고 있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다음은 이진용 선생님!" 어찌 된 영문인지 판사는 나를 ‘선생님’으로 깍듯이 호칭하고 있었다. "선생님! 참 잘하셨습니다. 이 선생님 같은 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밝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폭력을 행사하신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나는 "예, 잘못했습니다" 짧게 답했다. "벌금 일만원에 처합니다. 수중에 만 원이 있으신가요? 없다면 제가 빌려 드리겠습니다." 카랑카랑한 판사의 음성이 법정을 울려 퍼졌다. 일순간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나는 벌금형에 처해졌고 납부처에 벌금을 내고 아침 10시가 다 되어서 법원을 나설 수 있었다.
 
철창에 몇 시간 갇혀 있으면서 자유의 소중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루도 안 되는 구금 상태에 있었지만 마치 몇 년 갇혀 있다가 풀려 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은 담배를 피우는 것이 죄다. 이번 기회에 담배를 아예 끊어 버리자." 나는 굳은 결심으로 반 정도 남은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그 날 아침 날씨는 유난히 밝았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늦은 출근길에 나섰다.
 
언젠가 저명인사들의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에서 ‘맞담배질’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적인 정서로는 자신보다 열 살 이상 윗사람 앞에서는 담배를 삼가는 것이 올바른 예절이라고 했다. 삼십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런 상황이 또다시 닥치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못 본 척 지나쳐야 하는가?  
 
아무튼 그 날 이후 나는 지금까지 담배를 한 대도 피우지 않았다. 결국, 그 사건이 나에겐 전화위복이 되었다.

이진용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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