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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나이듦’을 연구하다

예전과 다른 100세 시대 다가와
새로 배우고 즐기는 세상 열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일상
우리는 이웃, 다 함께 살아가야

한참 글쓰기 작업을 하던 동료의 랩탑 컴퓨터를 잠시 빌려 쓰려 하니, 그가 건네주기 전 잠시 멈칫하곤 “화면의 글씨체를 키워 드릴까요”라고 묻습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저를 배려하는 섬세함에 고마움보다 야속함이 밀려듭니다. 아직은 문제없다 손사래 치며 받은 문서편집기의 글자들은 너무나 작아 눈을 찌푸리고 보아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할 수 없이 글자 크기를 조절하며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격의 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나이를 잊고 살지만 이럴 때 보면 저는 여지없이 그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부쩍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습니다. 상품의 뒤편 설명서도, 행사장의 소식지 속 명단도 잘 보이지 않게 되며 나이듦을 뜻하는 한자가 들어있는 노안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찾아옵니다. 오랜만에 안경을 새로 맞추러 갔더니 친절한 점원은 묻지도 않았는데 다초점 렌즈를 자연스레 권합니다. 이미 쓰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한둘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며 저 역시 헛된 저항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십수 년째 봄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학회의 올해 주제는 ‘나이듦’입니다. 계속 줄어드는 출생률과 길어져 가는 기대수명은 우리 사회가 나이듦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는 방향을 자연스레 가리킵니다. 시대가 원하는 것을 늘 함께 공부해 온 도반들 모두 이 주제에 이구동성으로 합의했습니다.
 
길어진 우리의 생애는 예전 중요하게만 보이던 일들 역시 다 변화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줍니다. 결혼이 통과의례와 같이 누구에게나 다가오던 시절은 아득히 멀어 보입니다. TV 속,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던 프로그램이 자연 속 홀로 살고 있는 사람의 관찰기로 바뀐 지도 오래입니다. 자신의 배우자를 씩씩하게 찾는 프로그램보다 각자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데이터를 모으고 관찰하며 알게 된 것은 놀랍도록 우리가 나이듦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문학과 언론에서 묘사한 간접경험으로, 쇠하고 무기력한 절망의 장면들이 우리에게 각인되기 일쑤입니다. 학습된 두려움은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만들어내기 쉽습니다. 게다가 어릴 적 보아온 나이든 분들의 삶은 이른 죽음과 일생의 고단함에서 기인한 질병의 고통이었습니다. 이제는 100세 이상의 나이를 누구나 꿈꿀 수 있는 축복이 다가오고, 과거와는 다른 삶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젊은 분들의 생각처럼 나이든 분들의 삶이 다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데이터 속 그분들의 삶 역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갑자기 많은 것이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난 전형처럼 트로트만 무한재생하고 바둑과 등산만을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뉴진스의 노래에 맞추어 버스킹을 하고, 유튜버가 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누구보다 능숙하게 다루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나이듦과 함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전보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동등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나를 대접할 사람도, 그 이유도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사회의 구성원이 늘지 않고, 가족이 단출해지며 복작거리던 분주함이 줄어든 만큼 한가로움 속 외로움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의 바람 잘 날이 없다던 고단함의 푸념은 어쩌면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다는 행복한 고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은 양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대상을 구분 짓는 생각과 늙어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종종 우리는 노인을 거리 두듯 표현합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중년은 적어도 나는 노인이 아니라고 끝까지 부정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가는 것도 삶의 한 단계에 불과합니다. 그 안에는 매 순간 새로운 가능성과 행복 역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은 청춘의 때만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며, 이제는 삶의 어떤 시기에서든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있습니다.
 
나이든 이들을 돌보는 이유는 그저 그들이 소중한 이웃이고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모두 소중하기에 나이듦을 너와 나의 이야기로 인식하고 함께 살아가기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꼭 대접하거나 대접받지 않더라도, 서로 존중하는 관계라면 충분합니다.
 
단지 그는 젊은 소중한 사람이고, 나는 나이든 소중한 사람일 뿐입니다.

송길영 /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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