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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연례행사

지난주 우리 가족은 회계 사무실에 갔다. 약속 시각보다 40분이나 일찍 왔다.  
 
“엄마는 왜 항상 일찍 와요? 할아버지가 엄마 어릴 적부터 약속 시각 보다 일찍 가라고 해서에요. 이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큰아들이 구시렁거렸다.
 
“습관이기도 하지만, 실은 더 큰 이유가 있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너희는 아니?”
 


두 아이 얼굴을 쳐다보고 내가 묻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인다.  
 
“너희 둘 얼굴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야.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싶고.”
 
내 말에 수긍한다는 듯 아이들은 조용했다. 나는 길 건너 던킨도너츠에 들어가 약속 시각까지 이야기하며 기다리자고 했다.
 
아이들은 무척 바쁘다. 돈 벌랴. 여행하랴. 데이트하랴. 운동하랴. 파티에 가랴. 나는 젊고 바쁜 아이들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내가 전화하지 않으니 오히려 아이들이 스스로 한다. 지난번 통화에서 아들이 한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 친구들은 부모가 전화해서 아프다. 돈 보내라. 뭐 사달라고 해서 전화 받지 않아요. 그런데 엄마는 우리를 힘들게 하지 않아서 고마워요.”
 
에구머니나! 조심하라는 충고인가? 앞으로는 더욱 신경 써서 잔소리하면 안 되겠구나!
 
일 년에 한 번 연례행사로 택스 보고하러 회계사 사무실에 함께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에게 만나자고도 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우리 세금 보고를 꼼꼼히 해주시고 연락하면 빠른 답변 친절하게 해주시는 회계사와 사무실 직원들을 아이들도 좋아한다. 성실하신 회계사님 덕분에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아이들과 오래 있고 싶어서 회계사 만나러 가는 날은 더욱 서두른다. 데이트하러 가는 것처럼 흥분한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남편이 운전하고 나는 뒷좌석에서 자는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짓곤 했다. 지금은 반대로 작은 아이가 운전하면 큰아이는 옆에서 가는 곳을 입력해주고 뒤돌아보며 불편한 것 없냐고 묻는다. 차에서 내릴 때면 손을 잡아주고 길에서 걸을 때도 내 손을 잡고 걷는다. 우리 부부와 아이들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말 잘 들으며 따라다닌다.  
 
회계사 사무실에서 나와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한국 장에 간다. 물론 회계 비용도 점심값도 애들 장 본 것도 남편이 지불한다. 바쁜 아이들과 잘 지내려면 무조건 물심양면 다 해주면서도 바라지 않고 그들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아닐까?
 
“자식에게 요구하지 않고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 줄 아냐.”
 
말씀하셨던 친정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대로 나는 따르고 있다. 그래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의 그 깊은 속마음을.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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