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커스] 한인 1세들이 해야 할 마지막 임무
인터뷰 시간은 30분 남짓. 운전까지 해야 했던 상황이라 메모 대신 기억력에 의존한 인터뷰였다. 그런데 출발 10분도 지나지 않아 내심 놀랐다. 거침없는 달변에 뛰어난 기억력, 힘이 담긴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때 이 회장은 이미 70대 초반의 나이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의 성공담보다 실패 극복기였다. 사업이 망해 생활고로 두 번이나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었다고 했다. 형님(고 이종근 전 종근당 회장)이 부자인데 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자존심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의 성공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 대목이었다.
그 후 이 회장이 나라은행(현 뱅크오브호프로 통합)의 이사장이 되면서 다시 만날 수 있었고, 몇 년 뒤 이사장에서 물러난 다음에는 한인사회와도 멀어졌다. 그런 그가 2007년 연방하원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통과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 회장과의 20여 년 전 일은 한인 사회에 대한 기억도 소환했다. 1세들이 맹활약했던 당시와 지금의 한인 사회 모습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한인 1세들은 이제 하나, 둘 무대 중앙에서 내려오고 있다. 혹자는 이민 역사가 길어지면서 한인 사회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안정’이라는 말의 이면에는 ‘성장 동력의 약화’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듯해 반갑지만은 않다.
한인 사회의 정체성은 이 회장과 같은 1세들의 뚝심과 의지, 인내와 노력에 있다. 그들의 치열함이 지금 한인 사회의 토대가 됐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정체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석되는 것 같다.
물론 과거가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솔직히 1세들이 그야말로 팔팔하던 시절, 한인 사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다투고 부딪히는 일이 늘 벌어졌다. 종종 법에다 호소하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보였지만 열정과 에너지는 넘쳤다. 서로 방법은 달랐지만 목표는 공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1세대 주인공들은 은퇴하는데 이들을 대체할 주연 배우들의 모습은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1세와 2세가 서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세대 간 문화 차이, 의사소통의 문제 등등을 말하지만 이는 지엽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모자람 없이 자란 2세들에게 1세들이 경험했던 치열함을 따르라고 주문하는 것도 무리다.
‘한인 사회’라는 울타리가 왜 중요한지 2세들에 알려주는 게 1세들의 마지막 임무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이다.
커뮤니티 차원의 이벤트도 필요하지만 자녀들에게 한인과 한인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얘기를 들려주는 것도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동필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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