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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미한 변형사전 펴낸 정신과 의사

얼마 전 소포상자를 받았다. 나의 신간 수필집을 보내드렸더니 답 선물로 온 것이다. 언젠가 문학지에서 광고를 보면서 한권 사려고 하던 참이었다. 2021년에 출간된 1236쪽의 영어사전을 펼치니 이원택 박사의 ‘여는 글’과 ‘닫는 글’이 앞뒤 쪽에 실려 있다. 한글표기로 발음기호를 넣었기에 한국어를 알면 누구나 쉽게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간편하게 단어 하나에 해석도 하나씩이다. 그의 정성에 너무 놀라 축의금을 보내려고 전화를 드렸더니, 개정판 대형사전을 올해 봄에 출판하려 하니 그때 한권 사달란다. 자랑스러워 곧 예약금을 보내야겠다.  
 
뒤쪽에 실린 글에는 “영어가 뭐길래… . 뿌리째 뽑을 수도 없고 한번 흔들어 볼까나! 알려면 배울 수밖에 없다.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편자(이원택)는 수필가의 손으로는 말을 그리고, 시인의 마음으로는 말을 삭히고, 평론가의 눈으로는 말을 저울질하고, 번역가의 발로는 말을 공굴림하고, 의사의 머리로는 말을 가려낼 수 있도록 그동안 내공을 쌓아 왔노라”라고 편찬의 동기를 첨부해 두었다.
 
또한, 사전의 단어들은 등급을 매겨 놓았다. 예를 들면 ‘수’는 한국어로 대체 할 수 없기에 꼭 영어로 써야 할 말이다. 마지막 등급인 ‘가’는 영어로 쓰지 말아야 할 말이다. 한국에서 27년 미국에서 46년을 살아온 재미동포의 애국심에서 만들어진 사전. 특히 편자는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이 사전을 헌정하고 싶어 수년을 걸려 만들었다 했다. 나도 하루에 열 개씩 공부해 볼까. 해외 동포의 가정마다. 대한민국의 한 가정에 한권쯤은 가족이 함께 보는 사전으로 나는 간곡히 추천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수년 전 문학인들 모임에서, 또 그분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을 때 만나고는 뵙지를 못했다.
 
만화경(2007년), 요지경(2008년), 무아경(2009년), 혼미경(2011년), 신비경(2013년), 분광경(2018년), 안경너머로 세상을 엿보는 작가의 유머스럽고 코믹한 6권의 경시리즈이다. 충남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출간한 ‘메타 라이팅’은 63권의 참고 서적을 뒤 부록에 실어 놓아 논문 수준의 걸작임을 알 수 있다. 최근 나는 요지경 책을 다시 읽었다. 작가의 세월만큼이나 나의 눈이 너그러워져서인지 지난번 읽을 때처럼 당황스럽거나 얼굴이 붉으락 거리지는 않았다. 능청스럽게, 노골적이고 솔직한 저자의 다양한 어휘들에 나는 킥킥거리기도, 하하 큰소리로 웃기도 했다. 밤늦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그의 저서들에 빠져 버렸다. 박식한 그의 견해들은 나의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주기도 하고 배움을 주기도 했다. ‘분광경’과 ‘메타 라이팅’은 붉은 색연필로 줄을 그어가면서 정독했다. 분광경에서는 그만의 독특한 평론 수필, ‘소크라 테스의 고별사’도 독자에게 사유의 시간을 유도했다.
 


그는 개성이 뚜렷한 천재 예술가이며, 인간의 혼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이다. 어릴 적 초등학교 5학년 때 교육자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사를 왔다. 경복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군의관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 와 의사가 되었다. 힘들고 가난했던 그 시절의 우리 이야기가 재미나는 어휘로 저서마다 실감 나게 적혀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유학길에 올랐지만, 고국에 남은 어머니(현재 97세)와 동생들을 걱정하는 장남이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나이다.
 
어릴 적 꿈이 소설가였다는 이원택 박사. 경복중학교 2학년 때 교내 백일장에서 ‘가을이 주는 것’ 이라는 제목의 시로 입선이 되며 일찍이 문학에 두각을 보였다. 당시의 시를 읽어보면 요즈음 말로 애늙은이라고 할까. 미래의 가을 인생을 바라보는 문학적 영감은 절대 예사롭지 않았다. 한때는 행복한 결혼도 해보았지만 끝까지 가지 못한 그의 인생사. 그의 저서들을 통해 꾸밈없는 그의 일생을 음미하며 때론 가까이서 위로하지 못해 문우로서 조금 서글프다.
 
경복의 40회 자랑스러운 동창들과 친구를 사랑하는 우정의 불길. 그래서 오랜 세월 해외에서 살아가는 그가 더 외로워서 낭만적인 사랑 타령을 하는 것일까. 지금도 끊지 못하는 담배(백해무익)를 입에 물고 고뇌를 하면서 스스로 컴맹타령 하는 작가, 이원택 박사. 나도 그랬듯이 책을 편집할 때까지 태평양 너머에서 일일이 감수해야 하니 매우 머리 아픈 작업이었다. 타자를 치는 일도 비서가 해야 한다니 비서가 아프면 또 날짜가 지연된단다. 답답한 우리의 인생사가 그렇다. 그래도 그의 유별난 즐거운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의 늦가을 여생에 신의 축복이 듬뿍 내리시기를.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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