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살던 집으로 돌아온 대통령 카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건 2001년 여름이었다. 무주택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 운동 ‘해비타트’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 위해 부인 로잘린 여사와 함께 내한한 그를 인터뷰했다. 충남 아산 현장에서 그는 숙련된 솜씨로 나무를 자르고 망치질을 했다. 무더위에 연신 땀을 훔치면서도 연장을 놓지 않는 77세 전직 대통령 모습은 인상 깊었다.그는 1994년 김일성 북한 주석과 만난 이후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무르익었는데, 김 주석의 사망으로 회담이 중단된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통일을 위해 필요하다면 북한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며 열정을 보였다.
카터는 재임 기간(1977~81년) 인기가 없었다. 미국인은 그에게 연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재선에 도전한 80년 대선에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가 44개 주에서 이겨 당선됐다. 기록적인 대패였다. 스태그플레이션과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결정타였다. 1932년 이후 48년 만에 단임 대통령으로 불명예 퇴임했지만, 그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다. 카터센터를 세워 저개발국 선거 참관인 봉사, 질병 퇴치, 인권 증진 등 민주주의 확산과 사회 문제 해결을 소명으로 삼았다.
다시 그의 소식을 접한 건 2021년 여름이었다. 카터 부부가 사는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결혼 75주년 기념식이 열려 하객이 몰렸다는 기사였다. 카터는 백악관에서 나와 인구 700명의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1961년 손수 지은 집에서 그대로 산다. 저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방 2개짜리 집은 2년 전 시세가 약 21만 달러였다.
백악관을 나온 뒤 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온 유일한 미국 전직 대통령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당선 전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일은 드물다. 빌 클린턴은 퇴임 후 아칸소 대신 뉴욕에 자리 잡았다.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도 시카고나 뉴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당선 전보다 퇴임 후 더 웅장하고 고급스러운 주택에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터는 다른 대통령처럼 수백만 달러씩 사례하는 고액 강연이나 기업 이사회 활동을 하지 않았다. “백악관 생활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그 힘을 세상을 바꾸는 데 쓰려고 했다. 그래서 퇴임 후 더 존경받았다.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이란 별칭도 얻었다.
그가 적극적 치료 대신 호스피스 관리를 받기로 했다고 알리자 응원이 답지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추모’를 생전에 들을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 사투를 벌이는 대신 집에서 가족과 이별을 준비하는 마지막 역시 선도적이다.
박현영 /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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