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마누라 중독 증후군
제때 식사 챙겨 먹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약도 시간 맞춰 잘 먹으라고…. 길 떠나는 어머니가 어린 자식에게 채근하듯 나에게 거듭 당부하고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밀고 인파 속으로 총총히 사라져갔다.밤 12시30분. 아내는 비행기를 타고 그리운 고국으로 훌쩍 날아갈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내는 어머님의 사랑이 녹아 있는 어릴 적 같이 놀던 따뜻한 형제들 손을 잡고 잃어버린 추억을 찾아 타임머신을 타고 꿈속 여행을 떠날 것이다.
갑자기 혼자라는 느낌에 힘이 쭉 빠져 집으로 돌아오는 프리웨이 밤길이 칠흑 같았다. 젊었을 때 아내가 아이들 데리고 친정에 다니러 집을 나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격조했던 친구에게 전화해서 술 한잔 하자는 약속도 하고 역전다방 보조개가 예쁜 이양 얼굴도 보고 싶어지고, 하여튼 해방된 들뜬 기분에 신바람이 났었는데….
조여청사 모성설(朝如菁絲 暮成雪)이라, 젊었을 때의 검은 머리는 어느새 백설이 휘날리는 모습으로 변했으며, 좋은 세월 다 보내고 황천 문턱까지 왔다. 한창때는 아이들 키우고 집에서 살림하는 아내가 잘난 남편(?) 덕에 편하게 잘사는 줄 알았다. 나만 가족 먹여 살리려고 동분서주 뼈 빠지게힘든 줄 알았다. 집에서 아이들 키워주고 살림 잘하는 아내가 있어 내가 밖에서 마음 편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오랜 세월 아내의 보이지 않는 내조의 큰 힘 덕에 오늘의 내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으니….
‘마누라 신드롬’은 백약이 무효, 현대 의학으로도 치유가 불가능한 병인 듯하다. 나는 자금 한시도 마누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마누라 중독 증후군’ 환자가 되어 버렸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란 성경 말씀처럼 지금 마누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마누라 만세.
이산하 / 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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