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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메이드’ 표기 시대 오나

사람처럼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챗GPT’ 등 생성인공지능 성큼
창작산업에 근본적 변화 불러
인간과 AI의 작품 구별 필요해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옛말이 있다. 배움에 얻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 책을 훔쳤다면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책이 희소했던 과거의 흔적이다. 도서관이 잘 마련되어 있고, 인터넷에 수많은 정보가 쌓여 있는 현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배움을 장려하고 지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책 도둑은 다른 도둑과 달리 볼 여지가 있다.
 
그러면 글 도둑은 도둑인가. 책 도둑과 글 도둑은 말은 비슷해도 뜻이 전혀 다르다. 글 도둑은 남이 쓴 글을 가져와 마치 자신이 쓴 것인 양 행세하는 경우다. 배움을 얻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더 나은 작품을 쓰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남의 글을 이용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돈을 벌고자 하는 심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글 도둑은 도둑이 맞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생성 인공지능은 어떠한가?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바드’는 무서우리만큼 멋진 글을 써낸다. ‘스테이블 디퓨전’이나 ‘달리2’와 같이 전문 화가에 버금가는 실력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인공지능도 있다. 이러한 생성 인공지능은 무수히 많은 인간의 작품을 학습해서 이와 비슷한 창작물을 만들어 낸다.
 
기존 인간 작가들은 인공지능이 작품을 도둑질해 간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이 작가의 허락도 없이 작품을 학습하더니 이제 원본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유사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그렇게 여길 법도 하다. 하지만 인공지능 개발자들은 그저 기존 작품을 배워 창작해 내는 기술일 뿐이라 주장한다. 인공지능을 도구로 삼아 더 많은 이들이 창작 활동의 기쁨을 누리고 창작물을 함께 즐길 수 있게 되는 사회적 혜택을 강조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생성 인공지능을 상대로 한 저작권 침해 소송이 여러 건 제기되었고, 앞으로도 적지 않은 소송이 제기될 기세다. 현행법상 많은 쟁점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결과를 쉬이 예측하기 어렵다. 이처럼 문제가 어려울수록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생성 인공지능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어쩌면 생성 인공지능은 18세기 이후 제조업에 진행된 산업혁명과 비슷한 변화를 창작 산업에 가져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옷을 예로 들어보자. 산업혁명 전까지 모든 이들이 사람이 직접 짠 옷을 입었다. 하지만 이제 대다수는 공장 기계를 통해 상당 부분 자동화된 공정을 거쳐 생산된 옷을 입는다. 그 덕분에 질 좋은 옷을 훨씬 더 싼 가격에 풍족하게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이 직접 만든 옷도 남아 있다. 명품일수록 장인이 한땀 한땀 손수 제작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수십 년, 수백 년 후의 창작 산업의 광경도 이와 비슷할 수 있다. 사람 대부분은 생성 인공지능을 통해 자동적으로 생성된 작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인공지능 덕분에 값싸고 질 좋은 창작물을 한껏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 예술가가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 만들어 낸 작품도 남아 있을 것이다. 명품 옷에 붙어 있는 ‘핸드-메이드’ 표시처럼 ‘휴먼-메이드’라는 말이 작품에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
 
이러한 변화가 지속하는 동안에는 생성 인공지능의 창작물을 인간 창작물과 구별해서 알 수 있도록 표시하는 제도를 고려해 봄 직하다. 미래에 창작물 대부분이 인공지능을 통해 생성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면 굳이 인공지능이 만들었다고 표시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공장에서 만든 옷에 굳이 공장제라 표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창작물을 보면 인간이 만들었을 것이라 여긴다. 그러니 누군가 생성 인공지능을 통해 타인의 작품과 비슷하게 만들어 내고서는 마치 직접 만든 것인 양 표시해서 이득을 얻고자 꾀할 수 있다. 이런 행태가 허용된다면 원작품을 만든 저작자는 수익을 창출할 기회를 빼앗기고, 창작 활동을 지속할 동기가 사라져 버린다. 이런 도둑질이 만연한다면 가파르게 성장해온 K문화산업을 이끌어 온 재능들이 산업을 떠나고, 성공적인 K문화의 입지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요컨대 우리는 창작 산업에 있어 근본적 변혁의 출발점에 서 있는 셈이다. 창작 산업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성 인공지능을 통해 창작 산업이 한층 더 도약하고 모두가 더 풍요로운 문화를 누릴 길을 지혜롭게 찾아야 한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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