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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조건 없는 사랑

내가 임종을 처음 경험한 것은 서울의 어느 병원이었다.  오래전에 재가했던 숙모가 암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가깝게 지내던 사촌은 당시 싱가포르 건설현장에 있었고 나에게 간호를 부탁했었다. 함께 병실을 지켰던 사촌 언니는 내게 맡긴다며 숙모 임종 전 집으로 가버렸다. 산소 호흡기를 낀 채 차츰 의식을 잃으며 신음하던 마지막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관속의 시신을 보기도 했다. 한 분은 후손들을 잘 키워 낸 할머니의 호상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좋은 직장에 다니다 아쉬운 나이에 떠난 내 친구의 남편이었다. 이렇게 여러 죽음을 보았던 나의 사색의 시간들. 특히 6년 동안 중풍으로 고생하다 58세에 떠난 아버지의 시신이 화구에 들어가 활활 타던 충격은 두고두고 내게 큰 인생 공부가 됐다. 집과 돈, 명예 같은 부속품들은 모두 허무한 것들이라고. 무엇을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라, 물 흘러가는 대로 분수에 맞게 열심히 살라고 훈계하는 것 같았다.
 
최근 나는 동물병원의 수의사가 준 약과 주사로 인해 갑작스럽게 반려견을 잃었다. 두어 달 전 코요테에게 귀를 물린 일로 스타가 됐던 녀석이다. 지인들은 반려견과의 추억담을 전하며 나를 위로했다. 한 분은 목이 물린 강아지를 남편의 은퇴 연금으로 수술했고 지금도 살아있다고 했다. 동물을 사랑하는 미담이 내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었다.  
 
18년의 세월. 반려견과 쌓은 시간이 그리움과 슬픔으로 몰려왔다. 지인들의 말대로 뜰에 묻어보려고 구덩이를 팠다. 세 번째 만에야 배수가 잘되고 양지바른 언덕의 나무 아래쪽을 찾았다.  로즈메리 이파리로 향기를 넣어주고 극락으로 가는 경전도 읽어주고 남쪽으로 머리를 놓아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도 언젠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수십 년 가꾸던 뜰에 조금 뿌려질 테니깐.
 
이 녀석과의 인연은 특별했다. 젊은 날, 건강이 너무 나빠 인공유산으로 두 번이나 살생을 한 죄를 나는 철이 들어서야 알았다. 돌아보면 두 마리의 반려견을 정성껏 기르고 마지막까지 지켜본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다행히 우리 똘장군은 추운 겨울에 떠나 시신을 상자에 넣고 매일 바라볼 수 있는 행운이 있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터무니없이 장례비용을 올려버린 동물화장터의 횡포 때문에 우리가 망설이느라고 그리되었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믿지 못하는 딸은 서럽게 울다 지쳐 스케치북에 반려견의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달랬다. 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반려견을 돌보던 일상이 허전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답답함을 한동안 느꼈다. 불교에서는 떠나는 혼을 슬프게 붙잡지 말아야 좋은 데 태어난다고 하는데 말이다. 정말 아무 조건이 없는 진실한 사랑의 관계였다.  
 
반려견은 입양했던 딸이 고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흰 수염이 났었지만 활기를 되찾았다. 동물병원에서 치석을 제거하다 오히려 이빨에 금이 가는 일이 있고 난 뒤로는 딸이 직접 매일  이를 닦아줬다. 그동안 서로 못 본 세월도 보상해주면서 20년은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식사 당번인 나는 상추, 두부, 토마토 등을 돌아가며 조금씩 마른 개밥에 섞여 먹였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그동안 구수한 냄새가 나는 통닭을 얼마나 사 먹었는지 모른다. 가끔 실수로 상한 음식을 먹여 설사할 때는 흰죽이나 흰 빵으로 회복시키곤 했다.  
 
수년 전, 반려견의 이빨이 성할 때의 일이다. 내가 열무김치를 담그려고 줄기의 힘줄을 벗기며 톡톡 부러뜨리는 소리를 듣고 양푼 곁으로 쫓아와 앉아 달라고 조르곤 했다. 아삭아삭 열무 줄기를 맛있게 먹던 신기한 녀석은 전생에 한국인 같았다. 최근까지도 김치찌개에 넣은 돼지고기를 씻어 먹이곤 했으니깐. 또 한밤중에 언젠가 내가 응급실에 갈 때였다. 내 바짓가랑이를 마구 긁어대며 도대체 어디를 가느냐고 울부짖던 일이다. 그의 예견이 신기했다. 덕분에 난 살아 집에 돌아와 이토록 그의 시중을 들었는지도 모른다. 계란 크기만 한 총명한 그의 두뇌. 그래서 부자들은 애견을 복제하는가 보다.
 
강아지 때 맞은 예방 주사와 광견병 주사를 맞았을 뿐 병을 모르고 산 반려견이었다. 불행하게도 두어 달 전, 코요테에게 귀를 물리며 불행이 온 것일까. 지혈제로 상처도 잘 나았는데. 눈이 아파 병원에 데리고 간 게 탈이었다. 수의사는 잘 키웠다며 놀라기도 하고, 갈 때가 되었으니 준비하라는 말도 했다. 그런 노견에게 어느 사이 강한 주사를 목에 놓고 있었다. 다시 돌아보니 나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았다. ‘베이트릴’ 이라는 항생제 주사였다. 게다가 항생제 알약까지 먹였다. 주사를 맞고 하루 지나니 반려견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구토만 계속했다. 사흘째부터는 서지도 못했다. 마지막 날 오후부터는 시저 환자처럼 발작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열여덟 살이 되는 생일날 새벽에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노견이 되고는 우리가 외출만 해도 바리톤의 저음으로 송아지처럼 슬피 울던 강아지가 어떻게 떠났을까. 수명을 다해 죽은 게 아니라 병원의 약물로 고통을 받았기에 미안할 뿐이다.
 
며칠 전 포르투갈 시골에 사는 서른 살 개의 뉴스가 흥미롭다. 평생 목줄을 해본 적이 없고 온 들판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사람 음식을 먹고 살고 있단다. 자유, 건강식, 운동, 환경, 사랑은 우리 모두의 귀중한 생명 줄이 아닐까.

최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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