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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읽기] 폭스 뉴스가 거액 소송 당한 이유

흑인 민권운동이 절정을 이루고 있을 때였다. 1960년 3월29일자 뉴욕타임스(NYT)엔 ‘갈수록 커지는 그들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전면 광고가 실렸다. 어느 민권 단체의 이름으로 실린 이 광고는 남부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시에서 열린 평화적 민권운동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폭력 사용 등 불법을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광고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었지만 일부 과도한 주장도 있었다. 이에  L.B 설리번이라는 당시 몽고메리시 경찰서장은 이 광고가 경찰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50만 달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앨라배마 지방법원을 거쳐 주 대법원까지 간 이 소송은 원고인 설리번의 승리였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즉시 연방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리고 연방대법원은 1964년 하급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결정을 내렸다. 설리번 측이 광고가 진실을 외면했다는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는 한 신문사는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에서 브레넌 연방 대법관은 ‘실질적인 악의(actual malice)’라는 대단히 중요한 개념을 도입했다. 이것은 취재한 내용이 허위임을 알면서도 이를 기사화하거나 처음부터 진위에 대한 확인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경우를 의미하는 법률적 개념이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공인(권력)에 대한 언론의 비판 기능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의 키워드는 ‘실질적인 악의’다. 따라서 언론은 진실만을 보도해야 하고 동시에 그것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권력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다.  
 
투표 시스템 개발업체인 도미니언(Dominion Voting System)사가 지난 16일 대형 언론사인 폭스(Fox)와 그 모회사를 상대로 16억 달러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도미니언은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스윙 스테이트인 조지아, 위스콘신을 비롯한 28개 주에서 사용된 투표 기계와 집계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생산. 판매한 회사다.  
 
도미니언 측은 폭스 뉴스가 2020년 대통령선거는 결과가 조작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을 옹호하고 도미니언사의 투표 기계와 집계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도미니언 측은 반복적으로 투표기기 오작동과 집계 조작을 보도하는 폭스 뉴스의 유명 앵커들에게 수천 건의 반박 자료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보도는 지속됐다고 주장했다.  
 
도미니언 측이 제시한 증거 자료에 따르면 당시 폭스 뉴스의 스타급 유명 앵커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거짓임을 알면서도 시청률 하락 우려와 광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정 선거를 주장했다는 것이다.  폭스 뉴스의 스타 앵커인 터커 칼슨, 션 해니티, 로라 잉그래햄 등은 자기들만의 대화방에선 트럼프의 선거사기 주장을 “헛소리고 놀라운 미친 짓” 또는 “완전히 진실에서 벗어난 음모”라는 말을 주고받았으면서도 정작 방송에서는 딴소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폭스 경영진의 눈치를 보면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보도를 무시하고 차단했다. 선거 당일 애리조나주의 개표 결과는 바이든의 0.4%p차 승리라는 특종 보도를 했던 취재기자는 해고됐다. 또 “어떤 식으로든 투표가 손상되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대담하게 트윗을 한 자쿠이 하인리히라는 젊고 재능있는 기자도 있었지만 황금 시간대에 마이크를 쥔 앵커들은 시청률과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었다. 폭스 뉴스의 간판인 터커 칼슨은 애리조나주의 특종 보도와  하인리히 기자의 트윗에 대해서 “당장 멈추어야 한다. 회사에 상당한 피해를 주고 있다. 시청자가 떠나고 있고 주가가 하락했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미국 언론 역사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로 기록되는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판결이 이번 도미니언의 소송에서 강력하게 소환되고 있다. 핵심은 ‘실질적인 악의’다.  폭스의 ‘실질적인 악의’로 인해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직도 2020년 대선이 도난당했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거짓 주장을 믿고 있다.  그로 인해 사상 초유의 연방의사당 공격 사태까지 발생했다. 게다가 지금도 진행 중인 폭스의 ‘실질적인 악의’ 덕분에 트럼프는 2024년 대선에 또 나서게 되었다.  
 
2024년 대통령 선거는 2020년에 비해 더 큰 혼란이 예상된다. 아무리 시청률이 높아도 폭스 뉴스는 언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동석 / 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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